“전자 건설 해운 등과 같은 산업 분야에 비해 패션시장은 회계나 세무에 대한 기본 개념과 이해가 많이 부족해요. 회계는 기업의 경영활동에 관한 결산자료입니다. 기업의 외부 이해관계자들이 합리적인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필요한 정보를 제공하는 회계인 셈이죠.” 딱 부러지게 재무회계와 세무회계의 차이를 설명하는 김가율 공인회계사의 눈빛이 빛난다.
막힘 없이 그녀의 설명이 이어졌다. “세무는 기업 회계기준에 의해 산출된 기업이익을 세법의 규정에 따라 과세소득을 측정하는 과정이예요. 과세당국인 국세청에 납세 자료를 제공하는 것이지요. 한마디로 회계와 세무는 정보 이용자와 목적자체가 다르기 때문에 이를 제대로 처리하기 위해서는 기업 내 CFO를 두거나 아니면 외부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는 것이 좋아요.”
그녀는 국내 최고의 회계법인으로 손꼽히는 삼일회계법인에서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 지난 2001년 공인회계사시험에 합격해 만 14년 동안 여러 산업분야를 돌며 커리어를 쌓아 왔다. 특히 그녀는 패션 기업들과 돈독한 네트워크를 갖고 있다. 패션기업들에게 그녀는 회계자료의 숫자만 분석하는 회계사가 아닌 패션업에 대한 기본 개념을 이해하고 조언하는 컨설턴트로 인식돼 있다.
바로 그녀의 독특한 이력 덕분이다. 김 이사는 서울대 의류학과 91학번으로서 졸업과 동시에 첫 직장을 국내 최고의 패션기업인 한섬에서 시작했다. 여성복 「마인」 디자이너로서 2년 직장 생활 후 선배가 설립한 프로모션 회사에서 1년 7개월 동안 MD로 활동한 독특한 커리어를 갖고 있다.
“디자이너로 활동하면서 자격지심을 많이 느꼈던 것 같아요. 입사 동기들이 그리는 스케치를 보면 선들이 살아 움직이는데, 저의 스케치는 복식사에 나오는 그림처럼 전혀 매력적이지 않았죠. 처음으로 열등감을 느꼈었죠. 그래서 주위의 만류를 뒤로 하고 한섬을 그만뒀고, 곧바로 합류한 선배가 설립한 프로모션 회사도 IMF 시절에 문을 닫게 되면서 아무나 못하는 것을 해야겠다는 생각에 회계사 시험에 도전하게 됐죠”라고 그녀는 당시 상황을 떠올렸다.
그녀는 감성적인 면 보다는 이성적인 성향이 훨씬 강하다. 원래 이과 출신의 공대 지망생이었던 만큼 숫자나 수학에 대해서는 거부감이 전혀 없었다. 그래서일까? 2년 남짓한 고시생 생활 끝에 그녀는 공인회계사 시험에 당당하게 합격했고, 제2의 인생을 시작했다.
3년 7개월 패션 실무 경력, 이젠 경쟁력
“대부분 회계사들은 경영학과 출신이예요. 의류학과 출신은 삼일회계법인에서 제가 유일무이했지요. 핸디캡을 극복하기 위해 방송통신대학 법학과에 등록해 3년 만에 성적우수자로 학사 자격을 취득했고, 곧바로 경영학 석사에 지원해 주경야독하면서 성적우수자로 졸업했어요. 가만히 못 있는 성격이다 보니 항상 채찍질하며 지금까지 달려 온 것 같아요”라며 활짝 웃는다.
그녀에게 핸드캡이었던 패션 디자이너 출신은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강점이 됐다. 3년 7개월의 패션 실무 경력과 회계사로서 전문성, 여기에 원만한 대인관계가 맞물리면서 매니저 직급에 있을 때부터 자연스럽게 영업이 이뤄진 것. 그녀에게 첫 직장이었던 한섬은 9년째 회계 감사를 맡고 있으며, 샤트렌 동광인터내셔날 엠티콜렉션등은 세무진단 및 세금경정청구 업무를 진행했다.
이곳 저곳에서 러브클도 이어져 지난 2008년 당시 지식경제부에서 진행한 비즈니스 퍼포먼스 모델(Business Performance Model) 개발을 위한 콘소시엄에 참여했고, 패션협회 글로벌 포럼 전문가 패널로도 활동했다. 서울대 의류학과에서 진행하는 패션 최고 경영자과정인 AFP도 지난 2013년부터 계속 강의를 진행하고 있다.
“패션업은 다른 산업 분야와 달리 감성적인 요소가 큰 비중을 차지하다 보니, 이를 잘 해석하는 눈높이가 필요해요. 일례로 재고자산에 대한 평가도 다른 산업분야와는 다른 시선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제가 패션업에 대한 실무 경력이 있다 보니 다른 회계사들보다는 이 방면에 대한 이해도가 높은 것 같아요”라며 스스로를 평가한다. 지금 그녀가 맡고 있는 M&A 관련 업무에서도 굉장히 현실적인 제안을 내놓는 것으로 인정받고 있다.
특진으로 1년 빨리 디렉터가 됐지만, 그녀는 여기서 만족하지 않는다. 앞으로 상무 직급의 파트너 위치까지 당당하게 올라서고 싶다고 말한다. 디자이너 출신의 회계사라는 그녀의 경력은 융복합을 말하는 지금의 시대상에 딱 맞아 떨어지는 경쟁력으로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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