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패션 글로벌화 첫 기회와 마주하다

2016-09-20 00:00 조회수 아이콘 9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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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방에서 세계의 중심으로 …
지난 달 5일 전자상거래 플랫폼 ‘카페24’를 운영하는 심플렉스인터넷은 중국 최대 온라인커머스 업체 메이리연합그룹과 함께 여의도 전경련회관에서 ‘왕홍을 통한 중국 마케팅 전략 세미나’를 열었다.
이 날 메이리연합그룹의 천치 CEO는 “메이리연합그룹의 대표 소셜커머스 채널인 모구지에 여성 패션 카테고리에서 한국 패션의 매출 비중이 70%를 돌파했다”고 밝혔다.
또 이날 왕홍 대표로 참석한 민은 씨는 “중국의 밀레니얼스(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들 사이에 한국 제품이 인기가 높아 일주일에 한 번씩 서울을 찾는다”고 했다. 그는 유창한 한국말을 구사해 눈길을 끌기도 했는데 그가 주로 찾는 곳은 다름 아닌 동대문이라고 했다. 
  
‘K 스타일’에 열광하는 세계 밀레니얼스
세계 경제 저성장 기조 … 소비 패턴 급변
국경 없는 온라인 통해 K-패션 세계로 
 
 
 

세계가 주목하는 국내 온라인, 스트리트 패션 

K-패션. 수년 전까지 이 단어는 ‘한류’에 편승하고 싶은 국내 패션계의 과대 포장 내지 희망사항쯤으로 여겨졌다. 드라마, 영화, 아이돌그룹의 인기가 아시아 곳곳에서 치솟았지만 그러한 열풍이 과연 패션으로까지 확산될 것인지 확신하는 이는 별로 없었다. 

이유는 당시까지 ‘패션’은 적어도 백화점 매장을 어느 정도 거느린 브랜드와 동의어로 인식됐는데, 제도권이 해외 시장에서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낸 사례가 없었기 때문이다. 

진출과 철수, 투자와 철회를 반복하며 과연 우리패션의 경쟁력은 국제 시장에서 통할만한 것이 아닌가하는 회의적인 시각만 늘어갔다. 

뿐만 아니라 드라마, 영화, 아이돌그룹이 아무리 인기가 높다 할지라도, 잠깐 반짝이다 사라지는 가벼운 유행쯤으로 한류를 평가절하 하는 분위기 역시 만만치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국내 패션은 그동안 한 번도 국제적 스포트라이트를 받아 본 적이 없었다. 

미국과 유럽의 OEM 수출로 시작된 국내 패션산업은 언제나 변방의 어디쯤에 머물며 서양 패션을 동경하는 입장이었다. 우리 내부의 가능성과 역량을 폄훼하는 시각은 그래서 생긴 것일지도 모른다. 

가깝고 거대한 시장인 중국에서조차 제대로 한번 싸워보지 못하고 발을 빼는 패션 기업들이 수두룩했는데, 이는 국내 패션의 경쟁력이 떨어져서라기보다, 이미 충분히 글로벌화 되어 있는 중국이라는 시장을 얕잡아 본 데 있었다. 

적어도 중국보다는 우리가 우위에 있다는 생각이 중국 필패의 원인이 됐다. 

그런데 분위기 반전은 ‘비제도권’에서 일어나기 시작했다. 

온라인이 없던 시절, 해외 진출을 상상도 못 했던 스트리트, 온라인 태생의 브랜드들이 중국 등지의 해외로 진출하면서, 지구촌 밀레니얼스들의 환호를 받기 시작한 것이다. 

전문가들은 K 패션의 특징을 스피디하고 트렌디하면서도 무엇보다 소비자 개개인의 개성을 드러낼 수 있는 ‘스타일’ 제안 기능이 탁월하다고 설명한다. 

지금 시대 젊은 소비자들이 선호하는 패션의 경향에 가장 부합하는 콘텐츠로서, K 패션이 인식되어지기 시작한 것이다.

오르테가 ‘자라’ 회장의 예언 적중 
  
2008년 SPA‘ 자라’의 한국 진출을 앞두고 스페인 인디텍스사의 오르테가 회장은 한 매체와의 인터뷰를 통해 “한국 시장에서 ‘자라’의 경쟁 상대는 백화점 고급 브랜드가 아니라, 인터넷 쇼핑몰 패션이 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당시 이 말을 들은 국내 패션 업계 관계자들은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보였다. 혹자들은 단순히 국내 인터넷 발달 수준을 감안한 전망쯤으로 받아들이기도 했다. 

그런데 지금 돌이켜보면 오르테가 회장의 이 말은 엄청난 혜안에서 비롯된 이야기였다. 세계 패션시장이 향후 흘러갈 방향을 꿰뚫고 있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자라’는 유럽 패션의 소싱처 역할을 하던 북유럽에서 탄생했다. 유럽 패션 기업들이 더 저렴한 소싱처를 찾아 아시아로 떠나면서, OEM 사업이 불황을 맞자 “우리가 만들어 직접 팔자”라고 시작된 게 ‘자라’의 출발이다. 
  
물론 규모의 경제에 기초하는 SPA의 특성상, 유럽이라는 거대 블록의 시장이 존재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기에 더해진 것은 세계 경제의 기조였다. ‘자라’와 ‘H&M’, ‘유니클로’ 등 SPA 내지 패스트 패션의 글로벌 제패는 세계 경제가 부흥기를 지나 저성장 기조에 진입하면서부터라고 해도 무방하다. 

경제 성장기 명품과 브랜드로 자신을 드러내던 사람들은 이제 자신만의 개성과 스타일을 찾기 시작했고, 패션의 실용화, 생활의 패션화를 추구하는 경향이 강해졌다. 

K 패션은 유럽과 같은 거대 블록의 뒷배가 없이도 콘텐츠 하나만으로 글로벌화 할 수 있는 환경이있었기에 가능했다. 바로 국경이 사라진 온라인 세계가 그것이다. 그 곳에서 브랜드도, 명품의 카피도 아닌 ‘스타일’을 제안하며 주목을 받고 있다. 

이재석 까페24 대표는 “한류가 25년 됐지만 인정받기 시작한 것은 최근 2~3년이다. 그 전까지 한류는 가볍고 깊이가 없고 반짝하다 사라지는 것으로 받아들여졌지만 바로 그렇게 트렌디하고 스트리트한 광의의 패션이 점차 세계 패션을 이끄는 주류로 부상하고 있다”고 했다.

스피드와 위트, K-스타일의 부상 

이 대표는 또 “삶의 양식이 바뀌고 옷의 의미도 바뀌었다. 브랜드로 자신을 표현하던 시대가 가고 스타일로 표현하는 시대다. 세계 패션의 흐름이 바뀌는 것이다. 그런데 이 분야에서는 한국이 가장 뛰어나다. 브랜드 즉 아이덴티티는 약하지만 트렌디하고 스타일리시한 것은 한국이 가장 잘한다. 한류의 부상도 그러한 맥락과 닿아있다”고 강조한다. 

한류 패션은 결국 세계 소비 시장의 경향과 맞아 떨어지며 유사 이래 첫 글로벌화의 기회를 만났다. 

과거 제도권 브랜드 시장은 미국이나 유럽 브랜드를 쫓아가는 식이었기 때문에 역설적으로 글로벌화가 불가능했다고도 볼 수 있다. 

하지만 지금의 K-스트리트 패션은 특유의 스피드와 위트, 스타일로 독창성을 구축해 가고 있다. 

글로벌 SPA에 필적할만한, 혹은 SPA에 싫증난 패션 피플들이 새롭게 매력을 느낄만한 콘텐츠로서 K 패션이 주목받는 이유다. 

전문가들은 이에 더해 인류 삶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고 있는 온라인 세상의 성장이 지속되면 될수록 그 가능성은 더 커질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국내 패션 산업이 시작된 이래 처음으로 주어진 이 기회를 어떻게 활용할 것인가는 이제 각 업체들의 몫이다. 

이미 시작된 크로스보더 행진, 한류 콘텐츠와 패션의 접목, 해외 유명 유통을 상대로 한 홀세일 비즈니스 등 보다 보폭을 넓혀야 하고 프로세스 혁신도 필수다. 
  
사라진 ‘니폰 필’
여전히 유효한 ‘프렌치’ 룩 
  
70년대 이전 태어난 사람이라면 8,90년대 홍콩 영화의 인기를 기억할 것이다. 주윤발, 유덕화의 인기는 지금 한류 스타를 능가할 정도였고, 이들이 출연하는 영화는 언제나 문전성시를 이뤘다. 

주윤발이 오토바이에 가죽 재킷을 입고 출연한 국내 음료수 광고는 지금도 사람들 뇌리 속에 설레는 추억의 한 장면으로 남아 있다. 그들의 헤어 스타일과 패션은 당시 젊은 세대에게 크나큰 영향을 미쳤다.하지만 그렇다 해서 홍콩의 패션 산업이 국내에 침투해 자리를 잡았나를 생각해 보면 그렇지 못했다. 

국경을 넘는 일이 지금보다 훨씬 어려운 시대였고, 산업 간 연계를 통한 시너지를 내는 일도 좀처럼 시도되지 않던 시절이었다. 

니폰 스타일은 어떨까. 2000년대 초중반 국내에서는 ‘니폰 필’이라는 말이 유행할 만큼 일본풍 패션과 헤어스타일이 유행한 적이 있었다. 당시 몇몇 일본 패션 브랜드가 국내에 진출해 히트를 치기도 했다. 

하지만 이 유행 역시 이내 수그러들었다. 반일 감정이 극심한 국내 정서의 특성도 있겠지만 너무 강력한 컨셉의 유행은 오래, 폭넓게 가지 못하는 법이다. 

대신 일본 기업들은 은근히 일본 색을 감추고 조용한 경영을 통해 국내시장에 속속 자리를 잡았다. 

인터넷이 지금처럼 발달하지 않았고, 스마트폰이 출현하기 전인 당시에는 대중 매체가 이들의 이미지와 상품을 공급하고, 대중은 그것들을 유행으로 받아들일 수 밖에 없었다. 매체와 유통이 모두 한정적이었기 때문에 확대 재생산될 기회도 적었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많이 달라졌다. 

모든 정보가 온라인을 통해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지금은 어떤 특정한 유행이 한 시기를 휩쓰는 일이 불가능하다. 다양한 유행과 스타일이 동시에 향유되고 공존한다. 

전문가들은 K 패션의 또 다른 가능성, 강점 중 하나로, 세계적으로 통할만한 감성을 꼽는다. 한국적 스타일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의 취향을 존중하고, 스타일을 제안하는 방식이 그것이다. 

명품을 근간으로 성장해 온 프랑스는 한 때 접근하기 어려운 패션이라는 인식의 벽에 부딪히기도 했다. 

이후 프랑스 패션 기업들은 동시대, 대중성에 기초한 일명 ‘컨템포러리’ 브랜드를 만들어내기 시작했고, 이를 통해 세계 시장을 파고드는데 성공했다. 

세상의 변화에 보폭을 맞춘 파리지앵의 ‘프렌치’ 룩은 지금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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