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답은 디자인, 브랜드 등 무형자산 키워야
우리 패션 기업들이 바라보는 ‘미래’는 언제부터인가 기대와 희망의 대상에서 큰 고민을 안겨주는 단어가 되어 버렸다.
봉제는 중국과 동남아시아로 주도권이 넘어갔고 원부자재는 중국과 일본, 이탈리아 사이에 끼어 가격이나 국제적 위상 모두 샌드위치 신세다.
완제품 내수시장은 저출산 고령화 시대에 비약적인 성장전략을 논하기가 민망하고 글로벌 시장에서 브랜드 파워를 찾기엔 갈 길이 멀다. 결국 나만의 경쟁력을 어디에서 찾을 것인지 확신을 갖지 못한데서 오는 고민이다.
경제전문가들은 물론이고 패션업계에서도 기성 패션의 승부처로 지목하는 것은 ‘본업에의 투자’다. 단순히 옷을 잘 만드는 것을 넘어 좋은 제품을 만들 수 있는 사람을 키우고, 조직과 시스템을 만드는 일이다. 더불어 매장, CRM 등 고객과의 접점에 있는 모든 채널이 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업의 자산이기 때문이다.
김석주 지엔코 대표는 지난 7월 열린 본지 주최 ‘제1회 코리아패션포럼’에서 저성장기 대응전략으로 지적자본 확충과 무형자산에 투자를 강조했다. 지적자본이란 기업이 가지는 무형자산의 총합을 말한다.
김 대표는 “패션기업에게는 사람, 기본적인 운영자금과 시스템, 그리고 브랜드 인지도를 포함한 고객과의 관계 등이 무형자산”이라면서 “보유 콘텐츠에 미래가치를 부여하기 위한 핵심자산, 미래의 생존전략 자본을 가지고 있는지 셀프 실사를 해볼 것”을 주문했다. 시설과 설비 투자를 R&D로 한정하지 말고 데이터베이스 구축, 디자인 개발, 브랜딩 등 넓은 의미의 무형자산으로 확장해 보자는 이야기다.
하지만 많은 패션업체들은 부동산, 공장 등 유형자산 투자는 여력이 닿는 한 진행하지만 미래가치, 무형자산에 대한 투자는 염두에 두고 있지않다. 패션의 꽃으로 불리는 여성복 업계에서도 법인세 감면이라는 목적에서 디자인 R&D 센터를 출범하는 경우를 종종 본다.
전현배 서강대 경제학부 교수는 “한국의 경우 R&D 투자는 많이 하지만 브랜드, 디자인, 경영혁신 관련 투자가 적은데 그 원인은 역시 유형자산보다 무형자산 투자가 높은 불확실성과 위험을 수반하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럼에도 제품력을 높이기 위한 크고 작은 노력이 영업활동 중 결실을 보거나 규모에 상관없이 체계적인 무형자산 개발 시스템을 만드는 업체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올 해 업력 31년이 된 잠뱅이의 사례를 보자.
소위 브랜드 시대가 열린 1980년대 이후 상대적으로 제품 개발 투자가 있던 품목이 청바지다. 당시 서울 시내에도 선, 후 가공공장들이 많았고 동대문 수출물량도 상당했던 때였기 때문이다.
잠뱅이는 소위 보세에서 브랜드화를 결심한 후 후발주자로 시장에 진입했다. 공장에 시제품 제작과 테스트 전담 인원을 두고 편안한 착용감을 주지만 봉제가 만만치 않은 스판 소재를 청바지에 적용하기 위해 수 백 번의 테스트를 거쳐 제품화에 성공했다. 지금은 흔해진 기모와 본딩 청바지도 그렇게 흥행 아이템으로 만들었다.
최근 온라인 유통 채널에서 가장 많은 판매고를 올리는 것으로 꼽히는 데님 브랜드 ‘모드나인’. 2006년 배효진 대표가 런칭한 ‘모드나인’은 동대문 사입 편집몰이 득세하는 상황에서 사업 첫 단추를 염색약 개발로 뀄다. 워싱 상태의 원단이 컨셉과 기획 방향에 맞지 않아 워싱 잘하는 공장을 찾아, 수입 원단 수배에 발품을 팔았지만 ‘내가 원하는 색을 직접 만들면 된다’는데 생각이 미쳤다. 청년 창업자에게 그저 실험용인 염료 구입은 큰 모험이었지만 지금은 원단 직조부터 워싱, 봉제, 후가공까지 원스톱 생산라인과 청바지 온라인 브랜드 1등이라는 결실을 맺었다.
아웃도어 전문업체 블랙야크는 스마트웨어 개발과 그에 사용되는 최적화 소재를 연구하는 R&D팀을 가동하고 있다. 지난해 강태선 회장이 직접 지휘해 IT, 의류 결합 연구 전문가를 영입하고 R&D팀을 꾸렸다. 디자인 경쟁이나 원부자재의 기능성만을 내세워서는 대기업이나 글로벌 브랜드와 정면승부는 어렵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포화상태인 정통 아웃도어 시장에서 웨어러블 디바이스 기술 발전에 맞춰 스마트웨어 수요를 선점하는 것이 목표다.
직접 피부에 닫는 옷을 만드는 이너웨어는 정부와 지자체 지원 산학연 연계 프로젝트나 원단업체와의 협업을 통한 완제품 개발이 활발한 복종이다.
좋은사람들의 경우 올 7월 기존 R&D팀을 보강해 스마트 스포츠 웨어 ‘기어비트 S’ 상용화를 진행하고 있다. 진행 중인 정부과제를 통해 유해환경 대응형 IOT 융합 스마트베이스레이어를 개발하고 있다. 앞으로는 소재는 물론 세분화 타깃 소비자 니즈에 맞는 기능성 이너웨어를 개발해 선보일 예정이다. 최근에는 119소방안전복지사업단과 협약을 맺고 소방대원용 이너웨어를 개발하기로 했다.
물론 그들은 지금 시행하는 연구개발 활동이 높은 판매고와 고부가가치를 안겨줄 지 알지 못한다. 하지만 지금의 투자가 ‘점프 업’의 기회가 될 것임을 안다.
패션 R&D 혁신 신성통상‘통합 아이템 사업부’
소싱 인프라에 전문 인력 배치
원가 절감·적중률 상승 이끌어
신성통상(대표 염태순)의 통합 아이템 사업부가 낸 성과를 살펴보면 패션기업의 R&D 투자 방향을 가늠해 볼 수 있게 한다. 특히나 거창한 사전 기획이나 비용투입 없이 이미 가지고 있는 자원을 활용했다는 측면에서 그렇다. 대부분 결과를 자신할 수 없어 인적자원과 시스템 혁신, 즉 무형자산 확보에 투자를 꺼리는 상황에서 기존 소싱 인프라를 활용하고 인력 풀을 재배치함으로써 분명한 효율을 냈기 때문이다.
신성통상은 각기 다른 컨셉으로 8개 브랜드를 전개하면서 중복되는 아이템을 통합 관리하도록 작년 여름 통합 아이템 사업부를 신설했다. 글로벌 SPA브랜드 대비 가격과 품질 우위를 점하기 위해 아이템별 전문화가 필수라고 판단했다.
아이템 사업부는 신성 8개 브랜드 이너류를 통합 기획하는데, 셔츠와 니트, 액세서리 3개 부서로 나뉘어 각 부서별로 디자이너, 상품기획, 생산관리 등 10여명이 배치되어 있다. 작년에 액세서리 디렉터를 영입한 외에는 인력 확충도 거의 없었다.
운영 방식은 각 브랜드 기획팀이 시즌 컨셉을 통합 아이템 사업부로 전달하면 아이템사업부가 상품을 기획, 물량까지 책정해 수주회를 연다. 수주회에서 각 브랜드가 선택한 아이템을 생산해 공급하게 된다. 운용 물량은 남성복 중심의 니트 사업부가 연간 80만장, 셔츠 사업부가 올해 총 250만장을 예상하고 있다.
올 봄 셔츠를 첫 출시한 결과 남성복 ‘앤드지 바이 지오지아’와 지난해 셔츠로만 100억원의 매출을 거둔 ‘지오지아’는 생산금액을 전년대비 각각 17%, 19% 줄였지만 매출은 30%, 6% 늘어났다. ‘올젠’은 아이템 사업부 신설 이후 올 춘하 시즌 캐주얼 셔츠, 티셔츠 매출이 총 매출의 23%까지 올랐다.
당초 제품 경쟁력 강화를 목적으로 아이템 사업부를 만들었는데 원가 절감뿐만 아니라 적중률 제고, 재고 감소 효과까지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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