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자 매장 퇴점 요구 시 ‘전점 철수’ 으름장
유통 대형사들의 출점 경쟁이 끝이 보이지 않는 가운데 입점업체들의 속앓이가 심각하다.
단순한 시각에서는 출점이 늘면 패션 업체들의 영업망이 늘어난다고 볼 수 있지만 비효율 매장 증가가 우려의 수준을 넘어 업체들의 채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있다.
저성장의 일상화된 불황 속에서 구매 채널마저 다변화되면서 메이저 유통의 비효율 점포가 증가하고 있지만, 이는 고스란히 입점사의 몫이다. 수수료를 챙기는 유통사 입장에서는 ‘규모의 경제’가 곧 수익성과 직결되는 구조이기 때문이다.
특히 시내 상권 중소형 점포들의 매출 부진은 심각한 상황인 것으로 파악됐다. 최근 2~3년 사이 신규 출점 점포 중 소위 흥행에 성공한 케이스도 전무하다.
업계에 의하면 올해 롯데, 현대, 신세계 3개사의 점포(연내 오픈 신규 점포 포함)는 백화점과 아울렛만 92개에 달한다.
롯데가 가장 많은 56개점, 현대는 오픈예정인 문정동 가든파이브아울렛을 포함 20개점이다. 신세계는 합작법인을 포함 총 16개의 백화점과 아울렛, 쇼핑몰을 운영중이다.
이밖에 이랜드리테일 52개, 모다아울렛 13개점 등을 포함하면 이미 과포화 상태다.
문제는 이처럼 점포망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지만, 과거 유통이 절대 파워를 갖던 시절의 관행이 남아, 협력사들이 부실 매장 철수를 뜻대로 못한다는데 있다.
비효율 점포가 늘어나지만 신규점포 입점을 거부할 수 없어 일부 업체들은 적자의 골이 갈수록 깊어지고 있다.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가 바로 숍 매니저 판매 보조금이다.
본사 측이 매출이 턱없이 낮은 점포를 유지하기 위해 매니저에게 판매 보조금을 지급하는 아이러니한 일이 업계 전반으로 확산되면서 업체에 따라 매출액 대비 판매비용이 60%까지 치솟는 사례가 생겨나고 있다. 여기에 제품 원가와 물류 및 관리비를 포함하면 이 매장은 빤히 적자라는 계산이 나온다.
업계 한 관계자는 “전국 백화점 중 40%에 육박하는 수수료를 지급하고 손익을 낼 수 있는 점포는 20곳이 채 안 된다. 대부분 만성적자의 부실 매장이지만, 유통사의 눈치를 보느라 쉽게 철수 결정을 내릴 수 없다”고 털어놨다.
그는 또 “국내 백화점과 아울렛 100여개 점포 중 한 달에 2~3천만 원 안팎의 매출 수준에 머무는 곳이 절반에 달한다”고 말했다.
상황이 이쯤에 이르자 유통 업체 측이 연 평균 매출 2~3억 원대 점포에 등급을 매기고 수수료를 1~3% 가량 낮춰주는 대책을 내놓았지만 입점사들은 미봉책에 불과하다는 입장이다.
백화점 입장에서도 오프라인 유통을 목표로 런칭되는 신규 브랜드가 지난 수년간에 걸쳐 꾸준히 감소세를 보이면서 발등에 불이 떨어지기는 마찬가지지만, 이렇다 할 혁신안을 마련하지 못하고 있다. 정기 MD 개편 축소 등의 방침을 정한 것도 같은 이유다.
업계 한 관계자는 “위기감이 커진 유통 측이 부실 매장 철수를 요구하면 ‘전점 철수’라는 초강수를 던지고 있어, 퇴점은 사실상 어렵다”고 말했다.
최근 오픈하거나 오픈 예정인 신규 점포는 유통사가 오히려 발을 동동 구르는 형국이다. 예전 같으면 치열한 입점 경쟁이 벌어졌겠지만 유통사의 입점 요구를 피해가려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 전국 요지에 대형 유통이 들어차고 업태 간 경쟁도 치열해지면서 과연 신규 점포가 일정 수준 이상의 매출을 낼 수 있겠느냐는 회의적인 시각이 늘고 있다.
일부에서는 신규 출점을 강행할 게 아니라 이미 우후죽순 난립해 있는 점포의 업태 전환이나 리뉴얼 등을 통해 효율을 끌어 올리는 게 우선이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하지만 유통사들은 연간 10억원 이상의 우량 점포 1~2곳을 내주고 일명 ‘옵션’으로 비효율 점포 5~6곳을 따라 붙이면 사업전체에 손익을 맞출 수 있다는 비정상적인 ‘수지타산법’을 들이밀고 있다.
이에 대해 또 다른 업계 관계자는 “국내 유통 생태계가 다점포를 보유한 대형사에 쏠리면서 가두점이나 자체 유통망은 위축, 의존도가 과도하게 커진 상태다 보니 유통 측과 대등한 협상이 불가능해진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불황이 장기화되면 그동안 확장일로였던 오프라인 매장의 부실 규모는 더 커질 것이고 그 비효율을 걷어 내고 자체적인 유통 체계를 갖추는 일이 매우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부실 매장 ‘판매 보조금’ 지급...왜?
패션업체들이 부실 매장을 철수하는 대신 판매 사원 보조금까지 지급해 가며 운영하는 이유는 간단한다. 중간관리 판매사원이 수수료 소득으로 버틸 수 없을만큼 매출이 낮기 때문이다.
한 달 평균 1~2천만원 매출이 고작인 점포에서 10~17%의 수수료를 지급 받는 경우 판매 사원급여, 매장 관리비 등을 빼면 적자다. 같은 조건에 월 평균 매출이 6~7천만 원이면 판매사원 간 소득 격차는 6배로 벌어지게 된다.
경력에 따라 인력 배치를 하는 게 업계의 관행이지만 만성적자 구조의 부실 점포는 판매사원 인력수급이 몹시 어렵다.
결국 보조금 지급이라는 제살깍아 먹기가 만연해진 이유다.
그럼에도 대형 유통의 부실 매장 철수는 사실상 불가능에 가깝다는 게 업계의 공통된 견해다. 유통사가 입점사의 매장 철수를 강제로 막을 수는 없지만 이를 빌미로 나머지 매장에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우려 때문이다.
실제 업계 한 관계자는 “부실매장 철수 요청을 안 해봤던 게아니다. 비효율 점포에서 나가겠다고 하면 장사가 잘되는 곳도 함께 빼라는 답변이 돌아온다”고 말했다.
40여 곳의 백화점 매장을 보유한 A사는 한 달에 부실 점포에 지급하는 판매사원 보조금만 1억1500만원에 달하고 있다. 이를 연간으로 따지면 한 해 이익금에 육박하는 금액이다.
그런데 해당 업체 측은 최근 판매사원 간 보조금 지급 대상의 형평성 문제가 불거지면서 롯데 본점까지도 지급 대상에 포함시키는 전점 지급 방식으로 전환 했다.
B사는 부실 매장에 지급할 판매사원 보조금을 유통 비용 계정에 새로 편성해 사업계획에 반영하고 있을 정도다.
그 결과 유통 비용이 50%를 넘어섰고 판관비만 23%에 달하게 되면서 말 그대로 팔아도 남지 않는 구조가 됐다.
삼성물산도 내년 2월까지 영업이 예고된‘ 엠비오’의 백화점 부실매장에 보조금을 지급하며 적자폭을 키웠다는 지적이 내부에서 제기된 바 있다. 브랜드 중단은 어느 정도 예견된 상황이었다는 것.
신생 업체들 중 일부는 매장 판매사원 채용 시 아예 ‘보조금 지급’이라는 조건을 내걸고 있다. 한 마디로 점입가경 국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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