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구개발․영업직 등 고숙련 직종 육성 및 일자리 창출
“의류, 자동차 등 해외 진출기업들의 현지 공장을 국내로 다시 불러들이는 리쇼어링(Re-shoring)보다는 국내의 핵심 공장의 경쟁력을 강화해야 양질의 국내 일자리가 늘어난다.”
한국노동연구원 조성재 노사관계연구본부장은 최근 ‘월간 노동리뷰 6월호’에 실은 ‘한국 제조기업들의 동아시아 생산네트워크와 일자리’라는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이 주장했다. 이는 국내 제조업의 급속한 공동화 현상과 일자리 부족의 대안으로 정부가 추진 중인 ‘리쇼어링’과는 대치되는 주장이어서 주목을 끈다.
리쇼어링(re-shoring)은 해외에 나가 있는 자국기업들을 각종 세제 혜택과 규제 완화 등을 통해 자국으로 불러들이는 정책을 말한다. 싼 인건비나 판매시장을 찾아 해외로 생산기지를 옮기는 “오프 쇼어링(Off-shoring)”의 반대 개념이다.
조성재 본부장은 “글로벌 생산 분업체계를 고려할 때 해외에 진출한 현지 공장을 국내로 다시 되돌려도 경쟁력을 잃기 십상인 만큼 국내 공장을 고부가가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는 첨병으로 키워 내 ‘비교우위’를 점해야 일자리가 더 늘어날 수 있다”는 주장을 펼쳤다.
특히 해외 진출기업 공장의 국내 모공장(Mother Plant)의 중심성을 유지하면서 연구개발직과 영업직 등 고숙련 직종을 중심으로 제조업 일자리를 지키고 만들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번 보고서는 의류, 전자, 자동차 등 대표적인 3개 산업을 분석한 내용을 토대로 “해외공장 설립=일자리 감소”라는 구도가 잘못됐음을 입증하고 있다.
조 본부장은 보고서 머리말에서 “제조업은 고용에 미치는 양적 영향 이외에도 양질의 일자리를 창출하는 잠재력이 크기 때문에 일자리 질 제고를 위해서도 중시되어야 할 산업”이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제조업을 중심으로 고용, 부가가치와 소득을 동시에 제고할 수 있는 종합적인 경제 전략이 검토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세계 최대 제조업국가인 중국을 포함한 동아시아 지역의 국제 분업 전개 속에서 한국의 위상을 재조명하고 그러한 거시적 환경 변화가 일자리의 양과 질에 미치는 영향, 나아가 그 영향이 숙련과 직종에 따라 달리 나타나는 효과를 규명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국내 모공장이 해외사업장 선도하는 노력 필요
연구개발 투자, 기업 고도화 관건…제조업 평균대비 미비
우리나라 의류업체들은 1960년대 이후 주로 수출을 통해 성장해왔다. 단순 봉제업과 조립공정에서 출발해 생산의 전 과정을 수행하고 책임지는 OEM업체로, 나아가 스스로 디자인 기능을 갖춘 ODM과 자체 브랜드를 보유한 OBM(Original Brand Manufacturing)업체로 도약하기도 했다.
더욱이 홍콩, 대만 업체들과 마찬가지로 한국 의류업체들은 일찌감치 해외공장을 건설해 진출하면서, 현지의 생산기능을 통제함은 물론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샘플제작, 조달과 물류 등에 이르는 전 과정을 책임지는 Full Package업체로서의 역량을 보여주었다.
※Full Package업체=Full Package업체 이전의 단계는 CMT(Cut, Make, Trim) 업체 즉, 단순가공․조립업체라고 불린다.
이에 대해 생산과 조달의 위계를 ‘다층적 글로벌 소싱 네트워크’라고 규정하고 있다. 한국 의류업체들 역시 개도국 진출을 통해 ‘삼각 제조(Triangle manufacturing)’가 이루어지게 됐다는 것이다.
국내 섬유의류업의 해외직접투자는 1990년대부터 크게 증가하기 시작해 1994년에 347건을 기록했다가 이후 등락을 거듭한 후 2005년 443건을 피크로 감소하기 시작해 2015년 100건에 머물고 있다. 투자금액 기준으로는 1996년 3억500만달러를 기록한 이후 등락을 거듭하다가 2015년 4억4000만달러 수준을 보이고 있다.
의류업으로만 좁혀보면 투자대상국별로는 법인 수에서 2000년대 중반까지 압도적 비중을 차지하던 중국이 10% 미만으로 하락하고, 베트남의 비중이 60%를 넘게 됐다. 금액에서도 2010년을 계기로 베트남이 중국을 추월했다.
보고서는 섬유의류산업 중 주로 미국 등 선진국 빅 바이어들의 주문을 받아 베트남에서 대량 생산 후 이들 나라로 OEM수출하는 우리나라 대기업들의 사례를 중심으로 의류산업에서 동아시아의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의 현황과 그에 따른 일자리 변동을 진단하고 있다.
거대 시장을 배경으로 바이어가 글로벌 가치사슬을 지배하며, 이들은 때때로 생산에 필요한 소재는 물론 기계와 장비까지 지정하는 경우도 있다. 이들의 주문을 받아내고, 때로 적극적인 제안을 통해 경쟁업체와 차별화되고 배타적인 주문을 끌어내는 영업사원의 역량이 대단히 중요함을 알 수 있다.
또한 근본적으로 상품의 가치를 높여주는 디자이너들이 영업사원과 처음부터 함께 개발과 샘플 제작, 승인 업무에 참여한다는 사실도 확인했다.
이들 영업과 개발, 디자인을 중심으로 본사 기능이 이루어지며, 이에 따라 본사의 직종 구성은 철저히 영업사원과 디자이너, 관리 인력 중심이다. 다만 샘플제작 업무는 C사의 경우 베트남에 대부분을 맡기고 있으며, A사의 경우는 영업사원과 디자이너가 주도하고 파견과 아르바이트 등 주변 인력이 이를 도와주면서 동대문이나 성수동 등에 외주를 통해 해결하고 있다. 그런데 A사의 경우도 점차 이러한 샘플 팔로업 업무를 베트남으로 이관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결국 기존에 남아 있는 본사 업무 중 주변 업무부터 개도국으로 이전된다고 볼 수 있다.
직접 생산기능은 주로 개도국에서 수행되는데 의류 쿼터 혹은 관세, 비관세 장벽 등 관련된 제도 변화에 대응해 중남미와 동남아로 지역 포트폴리오 전략을 구사하고 있다.
베트남의 경우 원부자재를 한국뿐 아니라 중국에서도 조달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샘플제작 업무와 마찬가지로 조달 업무도 점차 현지로 이관하는 기업들이 나타나고 있어 역시 본사 업무 영역의 축소를 예상케 된다.
이러한 글로벌 생산 네트워크에 따라 봉제인력에 대한 고용은 베트남에서 수천 명씩 창출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베트남에 여러 개의 공장을 가진 기업들이 많아서 다른 공장들까지 포함해 수만 명의 고용을 창출하고 있다. 또한 중남미와 인도네시아, 방글라데시 등에서도 현지인을 고용하기 때문에 이들 기업의 글로벌 고용 규모는 10만 명에 근접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지만 이들 기업의 본사 고용은 천 명을 넘기지 않는다. 저임금의 노동집약적 생산 공정은 개도국에 치중하고, 국내는 디자인과 개발, 영업, 관리에 주력하고 있는 분업구조를 확인하게 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A사의 경우는 이 분야의 사무관리 전문직의 숫자가 해외사업 확대에 따라 지난 16년간 10배 가까이 증가했다.
아울러 현지에서는 나름대로의 경제적 업그레이드를 위해 봉제공정의 린(lean․군살이 없는) 생산방식 도입 이외에도 와싱 공정의 혁신, 샘플 제작 확대, 소재와 기계 등의 철저한 이력 관리 등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다만 아직까지는 이러한 혁신과 생산성 향상이 한국인 주재원과 현지 채용 한국인 중심, 그리고 일부 방글라데시와 필리핀 등 제3국인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고 유지하려는 한국계 대기업들의 전략과 국제시민단체의 압력을 받고 있는 바이어들의 감시에 기반 해 4개 사례 대기업들은 물론 그들의 중소 협력업체들까지 근로조건의 준수에서는 특별한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것으로 보이지 않는다.
다만 한국의 경영스타일이 밀어붙이기식과 신속성, 유연성, 임기응변성을 특징으로 하기 때문에 현지인들이 때로 당혹스럽거나, 자존심이 상할 가능성은 언제든지 존재한다고 진단했다.
한편 보고서는 이러한 의류산업의 글로벌 생산네트워크 전개 속에서 A사의 경우 국내 고용이 늘어나는 등 영업과 개발업무, 그리고 주재원 풀의 형성만으로도 고용 증가의 가능성은 열려 있다고 진단했다. 그러나 A사의 경우 고용증가 속도가 최근 느려지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GPN(Global Production Network)의 확장에 따른 국내 고용 증가는 한계를 지닐 수밖에 없다. 더욱이 트럼프 당선에 따른 미국 무역 및 산업정책의 변화가 어떻게 될 것인지, 그리고 4차 산업혁명으로 대표되는 기술의 변화가 GPN에 어떠한 영향을 미칠지 등은 모두 불확실성의 영역으로 남겨져 있다고 주장했다.
또 대외환경의 변동과 무관하게 전문적인 영업 인력이나 개발인력, 디자이너 등의 고용을 유지하거나 창출하기 위해서는 가치사슬 전반에 걸쳐 경쟁력과 건강성을 확보하는 것이 대단히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조 본부장은 그 중에서도 연구개발 활동은 의류산업의 고도화를 위해서도 가장 중요한 영역이지만, 우리나라 의류업의 연구개발비는 제조업 평균에 비해 턱없이 적은 편에 속한다고 지적했다.
즉 매출액 대비 연구개발비, 종업원 천명 당 연구원 수, 연구원 1인당 연구개발비 등이 제조업 평균에 한참 미치지 못한다.
조성재 본부장은 “이와 같은 상황으로는 이탈리아나 독일을 따라잡지 못하는 것은 물론 중국과의 경쟁에서도 뒤처지지 않을까” 우려했다. 따라서 독일이나 이탈리아와 같이 임금수준이 높은 나라에서도 의류생산이 왕성하고 고급품의 수출이 다량으로 이루어지고 있는데 주목할 필요가 있다고도 강조했다.
의류, 자동차, 휴대폰 등 3개 산업은 임금 수준은 상승에 따라 한국에서 중국으로, 다시 베트남으로 일자리가 이동하는 현상이 휴대폰과 의류산업에서 모두 나타났다. 3개 산업 모두에서 국내에 기획과 연구개발, A/S와 브랜드 관리 등의 고부가가치 기능이 소재하고 있다.
그러나 생산기능은 산업별로, 기업별로 차이를 보인다. 휴대폰은 A사의 구미공장의 생산량이 빠르게 줄어들고, 소재 생산 등에서 베트남 생산기지의 중요성이 커짐에 따라 모공장으로서의 지위가 위협받고 있었다. 다만 숙련 수준이 부족해 블록 셀 방식을 채택하고 있는 중국 공장들에서와 달리 높은 숙련을 바탕으로 1인 셀 방식을 채택해 유연성과 생산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자동차산업에서는 A사의 중국 생산량이 이미 국내 생산량을 훌쩍 넘어서고 있었다. 반면 의류산업은 수출 위주의 사례대상 기업들 중 일부는 아예 처음부터 국내 공장 없이 사업을 시작했던 것으로 나타났다.
그렇지만 가치사슬의 종류는 중국이나 베트남, 상류와 하류는 국내라는 이분법적 분업구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았다. 관련 산업과 경쟁기업들이 대거 등장해 가치사슬의 고부가가치 영역으로 사업을 확장해온 중국 사업에서는 물론이거니와 베트남에서도 일부 연구개발과 디자인 기능이 늘어나고 있었다. 그것은 베트남 생산기지의 위상이 높아지면서 개발에서 생산까지를 일관되고 빠르게 진행하고자 하는 기업의 전략이 작용했기 때문이다. 또한 다른 한편으로는 의류산업처럼 바이어들이 아예 샘플을 베트남에서 제작하기를 원하기 때문이기도 하다.
결국 국내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서는 단순한 이분법적 생산네트워크 구축이 아니라, 새로운 기술과 상품이 끝없이 시도되는 벤처 정신이 지속되고, 아울러 그러한 개척 정신과 창의성이 기술혁신에만 국한되는 것이 아니라 작업장 혁신에서도 발휘되어야 할 것이다.
작업장 혁신은 일자리를 지키면서 노동생활의 질도 향상시킬 수 있는 중요한 전략적 요충이다. 조성재 본부장은 해외진출이 이루어지더라도 모공장에서 작업장 혁신이 제대로 수행되면 국내 고용에 긍정적 영향을 미친다고 주장했다.
한편 국내 제조기업들의 해외 진출로 인한 국내 제조기반 붕괴를 우려한 정부가 2012년부터 유턴기업을 장려하고 있지만 효과는 미비하다.
입법조사처의 ‘최근 5년간 한국의 기업유턴 실적에 대한 통계’에 따르면 국내 유턴기업 투자 MOU 체결 실적은 관련 법 시행 당해인 2012년 14곳, 2013년 37개, 2014년 16개, 2015년 9개, 2016년 8월 5개사로 점차 줄어들고 있다. 지난 5년간 국내 유턴 및 투자를 약속한 기업은 81개사에 그친 것으로 나타났다.
조 본부장은 보고서 말미에 “과거에는 수출주도 성장인가, 아니면 수입대체 공업화인가가 중요한 이슈였다면, 이제는 글로벌 생산네트워크와 밸류 체인에서 우리나라 기업들이 어느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가가 핵심 이슈”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글로벌 생산네트워크가 발달한 현 시대에 있어서 자본의 환류는 주요한 정책 목표가 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보다는 국내와 해외 사업장 모두에서 경영활동 전반에 걸친 가치사슬을 고도화하려는 노력이 중요하며, 이때 앞선 기술과 조직 기반을 갖추고 있는 국내 사업장에서 생산, 개발, 브랜드 관리 및 영업 모든 측면에서 해외 사업장을 선도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보고서는 한국적 경영의 DNA를 다듬어나갔을 때만이 해외 현지공장에 그것을 다시 적용해 글로벌 마켓의 격심한 경쟁에 대처할 경쟁력을 갖게 될 것이라고 진단했다.
출처 : TIN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