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종업체 간 ‘제살깍기’식 경쟁…불신 확대
최저임금 인상으로 인력난 더욱 가중될 듯
섬유중소업체들이 ‘인력 빼가기(Poaching)’로 골머리를 썩고 있다. 인력 빼가기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 등 내년도 시행되는 노동법 개정에 이어 악재로 작용하고 있다.
이는 노동력에 절대적 의존도가 높은 섬유산업 특성상 업체들이 만성적인 인력난의 주요 원인 중 하나다.
인력 빼가기는 크게 3가지 형태다.
동종업체 간 전문 인력(숙련공) 빼가기, 외국인 근로자 빼가기, 해외 인력 빼가기이다.
우선 동종업체 간 전문 인력 빼가기는 과거 공단 내 입주업체 간에 인력들이 A업체에서 B업체로, B업체에서 C업체로 이직하는 형태였다. 공단을 벗어나지 않는 내부 이직 형태로 업체 간 묵인해왔다.
안산 소재 섬유업체 대표는 “과거에는 A기업에서 인력을 데려가면 다른 B기업의 인력을 데려오는 식으로 인력을 교환해 부족한 인력을 채우던 것이 이제는 그마저도 없다”고 말했다.
동종·유사 업종 사업체간의 경쟁적인 인력 빼가기는 업체 간 분쟁 소지의 원인 중 하나다.이와 관련해 한국노동연구원은 (숙련공 등)경력직의 경우, 사업체에 대한 기본적인 로얄티, 내지는 근로윤리 부재로 인한 문제를 야기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소규모 사업체의 경우 직원이 사업체 경영 전반에 대한 포괄적인 정보를 획득·축적할 수 있고, 이직을 통한 노동 시장 내 지위 상승 과정에서 회사 내 기밀 또는 기술들이 고스란히 타 업체로 유출될 수 있다는 점을 경고했다.
그러나 이제는 중소 또는 영세업체 간 인력 빼가기가 대기업이 가세하면서 소위 판이 커졌다. 대형 또는 중견 업체들이 기존 중소업체들의 지불 능력을 웃도는 임금으로 내걸고 숙련공 채용에 나서면서 숙련공들이 대형 또는 중견업체로 대거 유입됐기 때문이다.
“특히 영세업체나 중소업체들로서는 감당하기 어려운 임금을 대기업 쪽에서 제시하다보니 우리로선 이를 맞춰줄 여력이 없다. 고스란히 고급 인력들을 내줄 수밖에 없다”며 업계는 대기업의 막대한 자금이 유입되어 섬유시장을 교란시키는 행위라고 지적하고 있다.
숙련공 및 기술 해외 유출
인력 빠져나가 업체 존립 위기
그나마 국내에 머물렀던 숙련공들이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다.
인력 빼가기가 대기업에서 해외로, 단순 생산직에서 숙련공으로 그 범위가 확대됐다. 국내 대형 또는 중견 의류수출업체들이 해외로 생산기지를 이전하거나 설립․운영하는 시기와 맞물린다. 이는 해외 공장을 이전하면서 발생한 현지 근로자와 생산현장을 관리할 중간 관리자의 공백을 메우기 위해서다.
근로자의 입장에서는 더 좋은 보수와 복지혜택을 마다할 사람은 없지만, 중소업체로서는 시간과 비용을 투자한 숙련공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면서 회사의 존립과 직계되기 때문에 속수무책이다.
이에 대해 의류수출업체들은 퇴직자 중 해외 근무가 가능한 인력 위주로 선별하고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그러나 여전히 인력 빼가기 논란은 지속되고 있다.
이는 단순히 해외 인력 유출 문제만은 아니다. 섬유산업 전반으로는 고급 인력들이 보유한 기술이 해외로 유출된다는 점에서 막대한 손실이다.
“고급 인력난에 대한 대책 마련이 절실하다”며 현장 관리자, 염색기술자 등 고급 인력들이 대거 해외로 빠져나가고 있어 고급인력난까지 가중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과거 취재 과정에서도 퇴직 기술자 중 일부가 생산 관리를 책임질 중간관리자로 채용 권유를 받았거나 채용된 경우나 재직 중 권유를 받았다는 당사자들의 증언이 여러 차례 확인된 바 있다. 또 일부 근로자는 해외로 나갔다가 다시 들어온 경우도 있었다.
국내보다 많은 임금과 복지를 약속받아 해외로 나갔지만 정작 타지에서의 현지 적응 실패와 생산 및 품질 관리 등 과도한 업무에 대한 부담감으로 다시 돌아온 경우다. 그러나 이 같은 사례는 흔치는 않다.
그럼에도 최저임금 인상 등 국내 업체들의 경영 환경이 악화되면 해외로 눈을 돌릴 수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국내 업체들의 해외 이전이 가속화되면 해외에서의 숙련공 수요가 늘면 인력 빼가기는 더욱 성행할 것으로 업계는 우려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가 ‘갑’…사업주 “눈치 보여”
외국인 인력배정 근본적인 개선 없이 근절 어려워
외국인 근로자 빼가기는 고용 허가제 도입 이후 업체 간 경쟁을 초래했다.
외국인 근로자 쿼터제 때문에 상시 필요 인력을 충족하지 못하다보니 업체 간 외국인 근로자 빼가기가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외국인 근로자 전문 브로커나 장기 외국인 근로자들이 일정 돈을 받고 타 업체에 소개시켜주는 형태로 빈번하게 발생하고 있다.
인력이 부족한 업체에서 취업 전문 브로커를 통하거나 또는 장기 체류 외국인 근로자들을 섭외해 일정 돈을 지불하는 형태로 타 업체에서 외국인 근로자를 빼내고 있다.
설상가상 모 업체의 경우 외국인 근로자들이 타 업체로 가겠다며 임금 인상을 요구하며 으름장을 놓는 경우도 빈번하다. 수요는 넘치고 정작 업체들은 필요 인력을 구하지 못하다보니 소위 몸 값 따라 철새처럼 여러 업체들을 옮겨 다니는 외국인 근로자들이 사업주들의 골머리를 썩이고 있다.
때문에 요즘은 “외국인 근로자가 상전이다”라는 말까지 나온다. 오히려 사업주들이 타 업체로 갈까 노심초사하며 외국인 근로자의 눈치를 보고 있다.
“특히 명절이나 휴가 시즌이 끝나면 몇몇 외국인 근로자들이 무단결근을 한다. 행방을 수소문해보면 타 업체에서 버젓이 근무하고 있는 경우가 다반사다”라고 지적하며 “외국인 근로자들은 돈 벌려고 왔지만 이를 이용해 동종업계끼리 인력을 빼가는 행위에 화가 치밀어 오르고 신뢰감마저 무너진다”고 말했다.
위 사례는 사업주가 고용한 경우지만 취업 전문 브로커들이 주도적으로 외국인 근로자들의 이직을 부추기는 행태도 문제다. 고용노동부에 따르면 지난해 외국인 근로자의 사업장 변경 신청 7만5033건 가운데 근로계약 해지가 76.2%(5만7209건)를 차지했다. 근로계약 해지 사유는 자율 합의 5만2444건, 근로자 태업 2116건, 무단결근 827건, 근로자 귀책 1822건 등으로 나타났다.
고용노동부는 “자율 합의에 의한 근로계약 해지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지만 영세업체의 인력난을 감안할 때 근로자의 고의 태업 등에 의한 근로계약 해지가 상당수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설명했다.
브로커의 부추김으로 불필요한 사업장 변경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영세업체의 생산성 하락, 인력난 심화, 다른 근로자의 근로의욕 저하로 이어진다. 지난해까지 최근 3년간 사업장 변경 신청 증가율은 23.9%로 국내 체류 외국인 증가율(20.9%)보다 3%포인트나 높다.
이에 각 조합이나 단체들은 동종업체 간 인력 빼가기 자중을 위한 대안을 내놓고 있지만 근본적인 해결이 될 수는 없다. 외국인 근로자 빼가기는 근본적으로는 현 외국인력 쿼터제의 문제점에서 비롯됐다. 정부는 외국 인력을 확대할 경우 내국인 근로자의 일자리를 잠식할 수 있다며 복지부동.
결국 업체들로서는 불법 체류자 고용 외에는 선택의 여지가 없다. 또는 부족한 인력을 배정받기 위해 별도 회사를 설립하는 해프닝까지 벌어지고 있다.
이와 관련해 흥미로운 조사 결과도 있다.
안산시 비정규직노동자지원센터와 한국비정규노동센터가 공동 조사한 ‘안산․시흥스마트허브 중소기업 구인구직 실태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평균 대비 안산․시흥 스마트허브 지역의 실업률이 가장 높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이러한 요인으로 높은 이직율과 인력 빼가기를 꼽았다.
높은 이직률을 1차적 업체들이 부족한 인력을 채용하지만 곧바로 이직하는 근로자의 잦은 이직현상 때문이다. 근로자들이 더 나은 임금과 복지를 찾아 이직이 잦다는 이야기다. 이와 함께 2차적으로는 업체 간 인력 빼가기를 지적했다.
그럼에도 내년도에는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이라는 복병이 기다리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무시간 축소로 인해 인력난은 더욱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추가적인 인건비 지출과 채산성 악화에 인력난이 더해져 공장 가동을 멈추는 상황까지도 우려된다.
출처 : TIN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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