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스트 패션에 푹 빠지다

2010-06-10 09:29 조회수 아이콘 9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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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패스트 패션에 푹 빠지다

일본,
서구 럭셔리 업계의 노다지 땅으로 불리었던 일본 어패럴 시장이 보다 실용적이고 트렌디한 패스트 패션에 흠뻑 빠졌다.

베르사체의 일본 시장 철수에 이어 루이비통의 대규모 매장 오픈 계획이 철회되고 많은 럭셔리 업체들이 싱가포르와 중국 등지로 중점 시장을 이동하고 있는 가운데 일본 소비자들은 편안한 가격에 트렌디한 아이템을 구비한 패스트 패션의 융통성에 잔뜩 매료된 모습이다.

실제로 그 어떤 패션 도시의 고객들보다 자유로운 믹스앤매치를 즐기는 일본 소비자들은 트렌드에 뒤처지지 않으면서도 그들의 개성을 살릴 수 있는 패스트 패션이 의식있는 소비자, 혹은 보다 진보적인 소비 행위로 인식하고 있어 패스트 패션 붐은 장기화될 전망이다.

트렌디한 경제적, 진보적인 소비 패턴
값싸고 패셔너블한 어패럴 업체는 오래 전부터 존재해왔지만 패스트 패션이 그저 ‘값싼 옷가지’라는 인식을 벗어나 ‘시크한 룩을 만들어주는 필수적인 요소’라는 것을 인식하게 된 것은 21세기 중반, 케이트모스나 시에나밀러, 니콜리치 등이 이끌었던 보호시크(Boho chic)가 세련되고 감각적인 스타일로 부각되면서부터였다.

어느 틈엔가 각종 매체들을 통해 소비자들에게 친숙해진 ‘보호시크’ 혹은 ‘럭셔리 브랜드와 패스트 패션의 자유로운 믹스앤매치’라는 표현은 그 동안 갇힌 틀에서 패션을 이해해왔던 소비자들에게 ‘패션은 개성을 드러내는 즐거운 공작’이라는 생각의 전환으로 이어졌다.

디자이너가 일방적으로 제시한 스타일을 그대로 수용하는 대신 소비자들 스스로 스타일을 조합해내는 2차적 창조자의 모습을 띠게 되었다. 그런 만큼 오랫동안 서구의 패션 브랜드들의 집결지로서 다양한 브랜드와 접촉해온 일본 소비자들이 그 동안의 단련된 ‘감각(!)’으로 자신의 스타일을 연출할 수 있는 아이템을 구비한 패스트 패션에 매료된 것은 당연한 결과인 셈.

오랫동안 지속되어온 경기의 침체 또한 일본의 패스트 패션 시장을 강화시킨 원인으로 작용했다. 일본은 미국에 이어 세계 2위 규모의 럭셔리 시장이지만 몇 년간 이어져온 경기 침제로 지난 1980-90년대 럭셔리 브랜드를 숭상해왔던 소비자들이 ‘경제적 소비’의 필요성을 깨달았고 획일적인 패션보다는 실험과 조합을 중시하는 젊은 층의 패션 스타일 변화가 가세하면서 패스트 패션 시장은 비상할 기반을 마련했다.

물론 ‘주어진 스타일’에 길들여진 중년층 소비자들은 여전히 럭셔리 브랜드를 선호하고 있지만 역동적인 파워로 일본 어패럴 시장을 주도하는 젊은층들은 럭셔리 브랜드에 종속되기 보다는 다양한 머천다이징과 발 빠른 신제품 유통을 보장하는 패스트 패션의 실용성을 높이 평가하고 있어 일본 어패럴 시장의 변화는 가속될 전망이다.

어찌 보면 일본 시장은 장인 정신과 전통으로 무장한 럭셔리 브랜드의 고고함에서 벗어나 시선을 끄는 공격적인 마케팅과 스피디한 신제품 전개로 늘 변화를 자극하는 패스트 패션의 ‘변덕스러움’에 길들여지고 있고, 점점 짧아지는 트렌드 주기가 소비자의 안달감을 유발시키면서 이를 해소시켜줄 경제적 수단인 패스트 패션을 해답으로 찾은 셈이다.

짧아지는 트렌드 주기가 패스트 패션 키운다
이는 럭셔리 브랜드의 집결지로 유명했던 긴자 지구의 전경 변화에서도 드러난다.

샤넬, 에르메스, 아르마니, 루이비통, 프라다, 푸찌, 에르메스 매장이 주도했던 긴자는 이제 H&M, Forever 21, 자라, 그리고 일본판 패스트 패션의 대명사 유니클로(Uniqlo) 매장이 럭셔리 브랜드에 도전장을 내밀고 있다.(유럽과 미국 시장에 본격 진군한 유니클로는 글로벌 디자이너들과 일본 로컬 만화가들이 그래픽 아트가 돋보이는 티셔츠 콘셉 매장 US Project를 론칭한데 이어 질샌더, 필립림 등과 제휴, 글로벌 시장에 브랜드 인지도를 고취했고 최근에는 이탈리아 디자이너 코스텔로태글리아페이트라와 손잡고 콜래보레이션을 진행하며 일본이 패스트 패션 브랜드의 파워를 과시하고 있다.)

1998년 일본 시장에 첫 번째 매장을 오픈한 자라는 2009년 11월 시부야에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하고, 현재 일본 내 매장 수를 50개로 늘리는 등 일본 패스트 패션 시장을 낙관적으로 전망하고 있다.

실제로 트렌디하고 다양한 아이템을 발 빠르게 반입하는 자라의 역동성을 경험한 일본 소비자들은 편안한 가격으로 스타일링을 즐길 수 있는 패스트 패션의 콘셉에 매료되었고 스타일과 지갑을 모두 효율적으로 관리, 적극적 패션 소비자의 마인드 전환을 이뤄낸다.


한편 자라의 경쟁자 H&M은 2008년 가을 긴자 지구에 첫 번째 플래그십 매장을 오픈, 일본 시장에서 자라와 경쟁 구도를 구축했는데 매장 오픈 소식이 전해지자 일본 여성들이 매장 앞에 줄을 서면서 패스트 패션에 대한 광적인 열광을 입증했다.

특히 칼라거펠트, 레이카와쿠보, 로베르토까발리, 매슈윌리엄스, 지미추 등 유명 디자이너들과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편안한 가격대에 디자이너의 감성을 제공하는 H&M이나 자라+마놀로블라닉 캡슐 컬렉션을 지켜본 일본 소비자들은 반드시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만 하이엔드 패션을 즐길 수 있다는 고정 관념을 떨치게 되면서 역동적이고 전략적인 구매 패턴을 차용한다.
실제로 미 달러화 기준 2~40달러 가격대의 ‘트렌디하고 탐낼만한’ 아이템을 집중 공략한 'H&M'은 긴자에 이어 하라주쿠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했고 매장으로 밀려드는 사람들을 통제하기 위해 확성기와 안전요원을 배치하는 소동을 벌일 정도로 일본 소비자들의 안달감을 자아내는데 성공했다.

포에버트웨니원(Forever 21) 또한 일본 시장의 패스트 패션 라벨 붐에 동참한 업체로 보다 젊은층을 집중 타깃으로 삼고 있다는 점에서 자라, H&M과 약간의 시장 차별화를 보인다. 2009년 하라주쿠 H&M 바로 옆에 문을 연 Forever 21은 깜찍한 스타일을 즐기는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스트리트 풍 감성으로 공략, 시장을 구축하고 있고 이제 젊은 10대를 벗어나 젊은 엄마들도 동참할 정도로 편안하고 즐거운 쇼핑 공간으로 저변을 넓히고 있다.

Forever 21은 나이는 있어도 ‘젊은 스타일’을 추구하는 여성을 고객층에 포섭하기 위해 엄마가 아이를 데리고 즐겨 찾는 긴자 지구에 두 번째 매장을 오픈했고 일본 시장에 대한 자신감을 드러내듯 구찌가 있었던 마츠자카와 백화점 내 매장 부지를 인수, 컬러풀하고 저렴한 가격대의 탑과 스커트 (4~17달러 정도)를 내세워 소비자들을 매장 안으로 유인하고 있다. Forever 21은 연간 10개 매장을 일본에 오픈, 일본 내 매장 수를 100개로 늘릴 계획이다.

영원한 강자는 없다
이제 시장은 소비자의 소통하는 패션 브랜드 편에 서 있다. 유니클로가 높은 품질로 일본판 패스트 패션의 자긍심으로 내세우고, 자라와 H&M이 디자이너 콜래보레이션을 통해 소비자의 아쉬운 부분을 보듬어주는 것처럼, Forever 21이 편한 가격에 미래의 패셔니스타들에게 패션의 즐거움을 알려주듯 시장은 패션 시장은 더 이상 맹목적 브랜드 추종이 아닌 소비자의 욕구 충족에 좌우되는 가변적 시장으로 재편되었다.

일본 내 패스트 패션 시장의 성장은 소비자의 욕구 충족만이 변화되는 패션 시장에서 승자로 남을 수 있는 무기라는 점을 보여주는 좋은 증거가 된다.

패션인사이트 2010.6.10(목)www.f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