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봄/여름, 플로럴 프린트로 청순함을 과시했던 당신이라면 2010년 가을/겨울에는 열정적인 아프리카를 가슴에 받아들여야 할 듯하다. 남아프리카에서 월드컵이 열리고 있는 탓일까? 아니면 시크하고 도회적인 다운타운 룩이나 페미닌하고 따뜻한 플로럴 프린트에 지루함을 느낀 탓인지 올 가을/겨울 디자이너들은 대담하고 열정적인 아프리카의 정취에 흠뻑 빠진 분위기다.
유럽의 패브릭과 아프리카 문화의 만남
실제로 뉴욕과 파리의 캣워크 무대에는 아프리카의 정서가 듬뿍 담긴 의상을 입은 모델들이 줄을 잇고 구찌, 랑방, 폴스미쓰, 다이앤폰퍼스텐버그, 겐조 등은 아프리카의 정서를 담은 의상을 통해 도회적 피로함을 씻어내는 신선한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그리고 패션계를 사로잡은 아프리카의 매력은 아프리카 출신의 디자이너에 의해서 더욱 활성화되고 있다.
일례로 나이지리아 태생의 디자이너 두로울로우는 빈티지 꾸튀르 패브릭과 실루엣에 아프리카 특유의 프린트를 접목시켜 패셔니스타들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모나코의 캐롤라인 공주는 지난 3월 모나코 왕족의 연례 이벤트에 두로울로우의 의상을 입고 등장, 독특한 아프리칸 정취와 유럽에 기반을 둔 꾸튀르 절묘한 조합 속에 이뤄지는 ‘세련된 멋’을 제대로 보여줬다.
특히 유럽의 패브릭과 아프리카 특유의 문화가 담긴 패턴과 프린트가 만들어내는 시너지는 정치·경제적 혼란과 빈곤의 상징으로 언급되는 아프리카의 모습이 아닌, 역동적이고 감각적인 아프리카의 문화에 포커스를 맞춤으로써 지구촌의 당당한 일원인 아프리카에 대한 인식의 변화까지 유도한다는 분석이다. 일각에서 2010년 가을·겨울 패션에 아프리카에서 영감을 얻은 프린트와 컬러가 대폭 반영된 것을 패션계의 ‘사회적 의식’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하고 있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를 뒷받침하듯 랑방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앨버앨바즈는 유엔 인사와 만나 아프리카 사하라 사막 주변에서 프로젝트를 진행하는 문제를 의논하다, 랑방 컬렉션에 아프리카의 문화적 정서를 반영하게 되었고 다이앤폰퍼스텐버그는 지난 3월 뉴욕에서 ‘Women in the World’의 회담의 사회를 진행하며 리베리아, 나이지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에서 온 여성들을 만나면서 그녀의 컬렉션에 아프리카의 모티브를 차용하게 된 것으로 알려졌다.
아프리카를 보는 진지하고 의미있는 시각
그 배경이 무엇이든 확실한 것은 아프리카 부족의 타투를 등장시킨 다이앤폰퍼스텐버그의 매력적인 랩 드레스나 깃털 장식과 비드 넥피스가 이국적 감성을 자극하는 랑바의 2010년 가을·겨울 컬렉션에서 보듯 아프리카와 서구 패션의 만남은 매우 매혹적이고 열정적인, 그러면서도 묘하게 세련된 분위기를 자아낸다는 점이다.
실제로 패션계는 단순히 아프리카적 문양과 소재를 차용하는데 그치지 않고 프린트나 문양, 비드 장식 등 정통 아프리카의 테크닉을 제대로 하이 패션에 접목시키려는 보다 진지하고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고 있어 패션계와 아프리카의 만남은 좀 더 절묘하고 세련되어지는 분위기다.
또한 환경친화적이고 사회적 의식에 민감한 어패럴 브랜드 이듄(Edun)의 신임 디자이너 새론 와촙은 아프리카 동쪽을 여행하면서 아프리카의 정교하고 예술적인 수공예 기술에 영감을 얻어, 아프리카 부족 의상에 사용되는 메탈과 비드 장식을 가미한 아이템을 올 가을 선보이는 계획이다. 이듄은 축구를 모티로 한 미니 월드컵 라인에 아프리카에서 제작된 티셔츠를 포함시켜, 판매 대금을 우간다의 ‘Conservation Cotton Initiative’에 제공하는 의미있는 프로젝트도 진행하고 있다.
실제로 최근 패션계에서는 단순히 일회성 아이디어 창고로 아프리카를 활용하거나, 일시적 ‘도움’의 대상으로 아프리카를 바라보는 대신 좀 더 지속적이고 창의적으로 아프리카 문화에 접근하고 패션 인력으로 바라보는 현상이 일고 있다. 일례로 미국 소비자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독특한 스카프 라인,
Sammy Made Ethiopia는 바니스뉴욕 패션 바이어로 일한 홀리히키도가 이탈리아와 아디스아바바를 오가며 콜래보레이션 작업을 한 것으로 서구 패션과 아프리카 특유의 정서를 훌륭하게 접목시켰다는 평가를 받았고, 시에라리온을 근거지로 활약하는 어패럴 업체 NearFar는 아프리카 특유의 정서를 반영한 플레이 수트와 미니스커트를 어패럴 체인 Anthropologie(앤쓰로폴로지)에 입점시킬 정도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또한 갭 디자이너 출신인 에린베티는 케냐에서 생산되는 어패럴 라인 Suno를 론칭, 아프리카의 문화의 영향력을 패션에 지속 연계시키는 한편 케냐에 패션 인력을 양성하는 기회를 제공하고 있다.(미국 영부인 미셀 오바마 또한 열정적인 아프리칸 정서가 살아있고, 사회적 의미도 담긴 수노를 즐겨 입는 것으로 알려져 패션계를 사로잡은 아프리카의 매력에 더욱 힘을 실어준다)
아프리카 어패럴 근로자에 공정한 대우를
한편 이탈리아 패션계에서 잔뼈 굵은 시모네시프라니가 운영하는 ITC(국제무역센터) 산하 EFP(Ethinical Fashion Programme)는 아프리카 등지의 가난한 나라의 어패럴 장인들이 공정한 대접을 받으며 장기적 고용을 보장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는 일종의 공정무역 보호 프로그램으로서 서구 패션계가 아프리카의 인력을 활용하고 지원하는 작업을 펼치고 있어 눈길을 끈다.
실제로 막스마라 그룹이 젊은 고객을 타깃으로 진행하고 있는 Max & Co의 경우 케나의 어패럴 인력을 활용한 액세서리를 선보이고 있고 있으며 아프리카 인력에 대한 공정한 대우와 시설 기준을 지키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점을 상기시킨다.
즉 서구 패션가가 아프리카의 인력을 차용하는 것은 자선이 아니라 ‘그들의 능력에 대한 공정한 대우’를 바탕으로 한 관계라는 점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 따라서 어패럴 업계가 아프리카를 값싼 노동력의 대안으로 생각하지 말고 정당한 노동력에 대한 댓가를 지불하고, 기술을 습득시키는 마인드는 아프리카의 노동력을 활용하려는 서구 패션가들이 반드시 유념해야 할 부분이다.
Afroloitan… 패션에 대한 아프리카의 자존심
한편 아프리카의 디자이너들은 아프리카 특유의 패션을 서구 패션과 접목시켜, 글로벌 소비자를 유인하려는 ‘Afropolitan (African와 cosmopolitan을 합성한 말)’을 의도하고 있어 관심을 끈다. 전통적인 아프리카의 소재와 서구 콘템퍼러리 의상을 융합한 새로운 트렌드를 가리키는 아프로폴리탄이라는 용어는 아프리카가 단지 서구 패션의 하부 구조가 아니라, 의미있는 패션 비즈니스를 펼칠 수 있는 독립된 존재라는 자신감이 드러난 것이다. 가나의 젊은 디자이너들은 로컬 패브릭과 기술로 아프로폴리탄 스타일을 생산, 서구 관광객들을 유인하고 글로벌 패션계에 아프리카 디자이너의 자신감을 전파하는데 적극적이다. 또한 가나의 무역성(Ministry of Trade)은 아프리카 패브릭과 프린트를 입는 ‘National Friday Wear’를 지정, 아프리카 전통에 대한 자부심과 아프리카 텍스타일/패션 산업을 발전시키는데 한 몫 하면서 내셔널 디자이너들의 성장을 돕고 있다.
물론 이 같은 움직임이 당장 아프리카를 패션의 중심에 올려놓을 것으로 기대하지는 않지만 서구 패션계가 보다 진지하게 아프리카의 문화의 패션 인력에 접근하고, 아프리카 스스로 아프로폴리탄 패션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어 패션계에서 아프리카의 의미가 한층 업그레이드 될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