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라로버츠의 소설 ‘without a trace’의 주인공 트레이스는 처음 본 여인 질리언이 ‘오랜 동안 잃었던 집’ 같은 존재로 느끼면서 사랑에 빠진 것을 깨닫게 된다.
날카로운 테크놀로지가 지배하는 21세기에 ‘집(home)'이라는 단어는 시대에 뒤떨어진, 어딘지 촌스러운 느낌을 주기도 하지만 죽음과 삶 사이에 곡예를 하던 트레이스를 정착시킨 존재가 질리언이 상징하는 ‘집’이듯, 트렌드란 이름으로 강요되는 변화의 압박에 지친 여성들에게 데님은 포근하고 따듯한 ’집’과 같다.
변덕스런 컬러와 디테일에 싫증이 날 때, 몸을 조이고 발꿈치를 들어 올리는 패션의 독재에 비명을 지르고 싶을 때 따뜻하게 손을 내밀어 주는 데님,
2011년 데님은 어떤 얼굴로 우리를 맞이할까?
2011년 데님이 전하는 따뜻한 세상수년째 지치지 않는 인기를 끌어온 스키니진은 지난해도 트렌드의 한 자리를 차지한 바 있지만 오래 입어 길이 든 빛 바란 색조, 한가로운 여행지에서 입을 법한 이국적인 자수와 컬러가 가미된 매력적인 진은 2011년에도 기억해야 할 ‘따뜻한’ 데님의 선두에 서 있다.
어딘지 모르게 히피의 향기가 묻어나는 액쉬드 와시드 데님은 칼처럼 곤두선 패션의 긴장을 풀어주는 존재로 어떤 아이템과 매치하느냐에 따라 페미닌한 아름다움, 대담한 남성미는 물론 도회적인 보헤미안 룩, 소녀적인 컨트리 쉬크도 연출할 수 있어 머스트 해브 아이템으로 손색이 없다. 선명하고 깔끔한 느낌을 주는 짙은 블루 데님 또한 액시드 데님과 2011 데님 트렌드를 이끄는 한 축으로 자리하고, 다양한 스타일과 컬러를 자랑하는 자수 장식은 스타일을 좀 안다 싶은 여성들이 꼭 기억해야 할 부분.
한 마디로 2011 봄/여름 시즌 데님은 ‘여유롭고 편안한’ 고향 같은 느낌을 자아내는 것이 특징으로 선택폭이 넓어진 컬러뿐 아니라 데님 블래이저/데님 베스트/데님으로 가장자리를 두른 모자/데님 미디엄 쇼트 스커트, 데님 롱 스커트, 데님 와이드 레그 팬츠, 클래식 컷 데님 팬츠, 미디엄 쇼츠 등 원한다면 머리부터 발끝까지 데님으로 치장할 수 있다.
위 아래 청-청 코디에도 경기를 일으키는 여성이라면 너무나 많은 데님 아이템 앞에 길을 잃기 십상이지만 도전과 유머를 즐기는 패셔니스타라면 이제까지 힘들었던 위 아래 청청 코디는 물론 액세서리나 슈즈, 이너웨어까지 마음 가는대로 믹스앤매치를 실험할 수 있고 소심한 패셔니스타라면 화이트나 레드, 혹은 연한 탠 컬러의 아이템을 접목, 절충적 데님 룩을 선택해도 좋을 듯하다.
다시 말해 데님을 적극 차용하듯, 아니면 한 가지 아이템으로 제한해 안전한 방향으로 나가든 데님은 뾰족하고 조였던 패션 트렌드에 지친 여성들에게 휴식을 제공하는 데님이 트렌드의 전면에 서 있고 데님 마니아들에게는 그 축제의 시즌인 셈.
실제로 많은 데님 브랜드들은 스타일리쉬한 쇼츠부터 스키니 진, 플레어드 진, 농부들의 작업복 스타일의 편안하고 물 빠진 컬러의 늘어진 데님, 다양한 컬러와 와싱 진, 보헤미안적인 자수 장식 진 등을 머천다이징 전면에 배치했고 하이스트리트 리테일러들의 값싸고 트렌디한 데님 공격에 당황한 프리미엄 진 들은 좀 더 편한 가격에 트렌디한 데님 아이템을 선 보이고 있으니 2011 봄/여름 데님은 스타일 뿐 아니라 가격 면에서도 선택의 폭이 넓어지는 모양새다.
흥미로운 데님의 역사
그렇다면 ‘질리지 않는 패션 아이템’ 데님은 언제부터 우리 곁에 있었을까? 데님의 어원에 대해서는 그 인기만큼이나 다양한 설이 존재한다. Serge de Nimes라는 불어에서 기원했다는 것이 다수의 의견이다.
하지만 프랑스 남부에서 볼 수 있었던 Serge de Nimes가 울 실크 믹스였던 반면 19세기 영국에서 활용했던 퍼스티안 패브릭은 화이트 컬러의 날실과 블루 컬러의 씨실로 직조된 지금의 데님과 좀 더 유사한 구조를 보여 소재 면에서는 영국 쪽이 좀 더 가까운 편이다.
하지만 이탈리아 또한 제노아 출신의 선원들이 선상에서 코튼과 울, 혹은 린넨이 혼방된 블루 패브릭을 입었다는 근거를 들어 Jeans이라는 어휘가 Genoese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 데님의 기원에 대해서 어느 쪽도 양보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영국 작가 토마스 하디의 소설, The mayor of Casterbridge에는 퍼스티안 패브릭으로 만든 웨이스트코트, 브리치, 재킷이 등장하고 찰스 디킨스의 소설 Pickwick Papers에는 퍼스티안이 일상복 패브릭으로 흔한 소재였음을 유추할 수 있는 문장이 눈에 띤다.)이처럼 데님 어원에는 다양한 설이 존재하지만 Levi Strauss가 지금의 Jeans를 만들어 냈다는 것을 부인하기는 힘들다.
캔바스 텐트 및 커텐 제품을 판매했던 레비스트라우스는 골드러쉬가 일던 1850년대 캘리포니아 금광지대로 이주한 뒤 1870년 네바다 출신의 양재사와 힘을 합쳐 데님을 리벳으로 고정시킨 질긴 웨이스트 하이 오버롤을 제작, 작업복으로 판매했다.
이 데님 오버롤이 Jeans라는 이름으로 금광 노동자들 사이에서 퍼져나갔고 이후 편안한 착용감을 위해 코튼 덕 소재는 빼고 자연스럽게 컬러가 빠진, 인디고 블루진을 만들게 되면서 오늘날의 리바이스의 기반을 닦았다.
시대와 함께 진화하는 데님
데님의 가장 큰 매력은 시대와 함께 진화된다는 것이다. 1950년대 데님은 Levi's 외에 Lee Coopers, Wrangler 등의 브랜드가 독특한 컷을 내세워 시장을 확대했고 제임스딘, 말론브란도, 엘비스프레슬리 등의 할리우드 스타들에 힘입어 틴 에이저들에게 열광적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초창기 데님의 역사가 광산과 얽혀있다면 이후에는 미국 영화와 록큰롤, 팝뮤직과 뒤엉킨 일종의 문화적 코드로 변화되는 과정을 보인 셈. 데님하면 미국적 문화를 연상하게 되는 것도 이 같은 배경에 근거한 것이다.
1970년대의 데님은 ‘개성’을 덧칠하는 시기로 다양한 벨보텀 진, 플레어드 스타일 등 렉 스타일의 변화가 시작되고 플로럴, 자수, 금속 아일렛, 스터드 장식, 아플레케, 그래피티, 반전 문구 등 다양한 데코레이션이 실험되는 시기로 히피 문화와 뒤엉킨 젊음의 상징으로 자리했다.
1980년대는 찢어지고 닳고, 낡은 진이 인기를 끈 시대이자 캘빈클라인, 아르마니 등 디자이너 진 라벨이 진의 패션화를 가속화시킨 시기이기도 하다. 스톤와시 진이 머스트해브 아이템으로 자리했던 시기도 바로 이때.
이후 1990년대는 라이크라의 가미로 핏과 기능성이 보강된 변혁의 시기로 블랙진을 위시한 다크 진이 인기를 끌었고 2000년대에는 스와롭스키 비딩, 실버/골드 스프레잉, 프레이드 슬래쉬, 깃털 장식 등 보다 패셔너블해진 진이 실험되었다.
고가의 소재와 차별적인 핏 로고, 스티치, 포켓, 디스트레싱 가공 등 독특성을 내세운 프리미엄 라벨이 등장, 데님 시장의 계급화가 이뤄진 것도 데님 패션계의 눈길을 끄는 변화 중의 하나다.
패션인사이트 2011.1.12(수) http://www.f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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