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반기 패션시장 안갯속
패션 업계가 총체적 난국에 빠졌다.
백화점 정기 세일이 시작된 6월 24일 이후 두 달 가까이 장마와 폭우, 태풍이 계속되면서 한 여름 장사는 완전히 물 건너간 분위기다.
여기에 미국의 신용등급 강등이라는 악재가 터지면서 불황의 그림자가 더 짙어지고 있다.
장마 이후 오히려 비가 더 많이 오는 날이 8월까지 이어지면서 포기 상태에 이른 업계는 다시 터진 미국발 경기 침체 앞에 가을 시즌 이후 상황을 가늠하기도 힘든 지경에 처해 있다.
이미 생활 물가 상승과 전세 가격 상승, 부동산 경기 침체 등으로 인해 소비 심리가 크게 위축돼 있는 상황에서 미국발 악재가 이를 더 심화시킬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선방한 업체도 모조리 뒷걸음질
7월에 그나마 선방한 업체들조차 8월 들어서는 모조리 뒷걸음질을 쳤다.
휴가 시즌이기도 했지만 비가 계속 온 데다 위축된 소비 심리가 여전히 요지부동이기 때문이다.
간절기 장사를 기대했던 업체들은 대부분 망연자실한 상태다.
8월 간절기 물량을 재빨리 줄인 몇몇 곳들만 예년 수준의 판매율을 가까스로 유지하고 있다.
판매율이 예년 수준이라 하더라도 매출은 줄어든 것이어서 대리점주 및 중간관리자들의 한숨은 더 깊어지고 있다.
롯데와 현대, 신세계 등 주요 백화점의 남성복과 여성복, 캐주얼 등은 8월 들어 9일 현재까지 10~20% 가량 매출이 줄었다.
그 중에서도 여성복은 6월부터 시작된 비상사태가 8월까지 이어지면서 백화점도 업체들도 연일 대책을 찾고 있지만 이렇다 할 뾰족한 수가 없는 상황이다.
롯데백화점 한 관계자는 “6월부터 8월 9일 현재까지 여성 영캐주얼을 중심으로 한 낙폭이 20% 이상으로 집계되고 있다. 선두권의 리딩 브랜드들까지 모조리 심각한 매출 부진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가두점 여성복도 7월과 8월 현재까지 20% 가량 매출이 역신장한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남성복과 캐주얼도 상황은 비슷하다.
나 홀로 성장세를 유지하던 아웃도어와 스포츠도 7월 이후 신장 폭이 둔화되기 시작해 7월과 8월 들어서는 목표치에 미달하는 수준으로 내려앉았다.
아웃도어 업계는 특히 올해 캠핑용품을 많이 늘렸지만 비오는 날이 계속되면서 기대 수준에는 미치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예년 수준 판매율은 물량 줄인 탓
물량을 줄이고 근접 기획과 매장 간 상품 로테이션에 초점을 맞추면서 판매 현장에서는 어려움을 크게 호소하고 있다.
특히 ‘시슬리’, ‘보브’ 등 중고가 영캐릭터 브랜드들에서 그러한 경향이 더 많아졌는데, 7월 중순부터 출시한 간절기 아이템의 경우 매장 당 한 스타일의 수량을 1~2장씩 공급하고, 반응에 따라 공급하거나 다른 매장의 것을 받아 판매하고 있다.
본사로서는 반응 생산을 높여 위험 부담을 줄이고자 하는 의도지만, 판매 현장에서는 물량이 없어 매출이 더 안 나오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름 판매율은 전반적으로 더 하락해 작년 8월 초와 비교해 5~10% 포인트 가량 줄어든 것으로 나타났다.
업계 한 관계자는 “백화점 여성복의 경우 세일까지 포함한 시즌 마감 판매율이 50~55% 정도 돼야 보통 이상인데, 올해는 물량을 줄였음에도 불구하고 40~50% 사이에 대부분 머문 것 같다”고 말했다.
여성정장과 남성복 등은 7~8월을 비수기로 친다 하더라도 예년에 비해 판매율이 떨어져 가을 시즌 대비책을 준비 중이다.
남성복 업체 한 임원은 “하루 장사 공치는 매장도 최근 빈번히 발생하는 상황으로, 여름 상품 판매율은 9일 현재 50%를 밑돌고 있다”고 말했다.
남성복의 경우 8월 매출이 워낙 저조해 그 데미지가 크지 않은 편이지만 가을 상품 출고시점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어 대부분 업체들이 이달 중순까지 매출 추이를 지켜본 뒤 출고시점을 잡는다는 분위기다.
◆SPA 확대로 밀려나는 브랜드들
패션 업체를 힘겹게 하는 것은 날씨와 경기뿐만이 아니다.
백화점들이 ‘자라’와 ‘H&M’, ‘유니클로’ 등 해외 SPA 브랜드들을 본격 입점시키면서 이들 매장이 들어서는 점포의 경우 10~12개 브랜드 매장이 동시에 철수하거나 외곽 점포로 빠지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다.
오는 26일 리뉴얼 오픈하는 롯데 잠실점과 강남점 등을 비롯해 신세계 인천점, 광주점 등 해당 점포들은 더 늘어날 전망이다.
특히 중가 영캐주얼 및 중가 커리어, 캐릭터 등 여성복과 유니섹스 캐주얼 등의 점 비중 축소가 확산되고 있다.
백화점으로서는 집객력을 위해서라도 이들 해외 SPA의 비중을 계속 늘린다는 방침이어서 해당 복종의 브랜드들은 점차 외곽으로 더 밀려나거나 아예 철수를 대비해야 하는 상황에 처해 있다.
이 와중에 일부 백화점이 여성복 브랜드들을 대상으로 ‘변신’을 요구하면서 품평회를 열겠다고 나서 일부 논란이 되고 있다.
이에 대해 백화점 한 관계자는 “여성복의 여름 매출이 더 떨어지는 근본적인 원인은 성격이 없이 유행 타는 제품을 턱없이 비싸게 팔기 때문으로, 유행을 타는 싼 제품은 도처에 널려 있다”고 말했다.
업계의 우려와 논란이 확산되는 가운데 근본적인 패션 유통 환경 변화를 인식해야 한다는 시각도 늘고 있다.
김소희 말콤브릿지 대표는 “소비자들에게 패션이라는 콘텐츠 자체의 매력이 점차 저하되고 있으며, 이는 선진국에서 이미 나타났던 현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국내 브랜드들은 천편일률적이고 비싼 경향이 있다”고 지적했다.
어패럴뉴스 2011년 8월 17일 http://www.appnews.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