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마 위에 오른 한국형 셀렉트 숍

2011-09-23 11:06 조회수 아이콘 1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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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마 위에 오른 한국형 셀렉트 숍

 



한국형 셀렉트숍이 결국 도마 위에 올랐다.

 

소비자들이 셀렉트숍으로 몰리면서 몇몇 셀렉트숍이 큰 인기를 끌었고 이 과정에서 많은 패션 기업들이 새로운 먹거리를 찾아 뛰어들었다. 그러나 개인이 운영하는 규모의 비즈니스를 ‘매스화’ 하기 위해 필요한 솔루션을 찾는 데 실패하고 점점 한계만 드러내고 있는 실정이다.

 

업계에서는 “리테일형 비즈니스인 셀렉트숍을 브랜드 비즈니스로 왜곡하는 과정에서 나타난 결과”라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셀렉트숍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서 필요한 유통 환경이나 리테일 노하우를 갖추지 못한 채 당장 소비자들이 찾는 유명 브랜드, 유명 디자이너를 입점시키는 데 급급하다보니 결국 ‘여기가 저기’ 같은 현상을 재현하고 있는 것이다. 또한 리테일 비즈니스에 맞도록 인력 구성과 사업 구조를 설계해야 하는데 기존 ‘브랜드 비즈니스’ 시절의 방식을 그대로 적용하기 때문에 적지 않은 문제점이 생기는 것이다.

 

백화점 같은 거대 유통업체도 마찬가지다. 해외 백화점들이 직매입으로 상품에 대한 책임을 지고 새로운 콘텐츠를 적극 개발하는 것과 달리, 국내 백화점들은 막대한 자본력과 엄청난 유통망을 가지고 있음에도 셀렉트숍 즉, 유통업체를 유통하는 기이한 형태를 취하고 있다.

 

현재 한국형 셀렉트숍이라고 일컫는 국내 기업들이 운영 중인 셀렉트숍은 대부분 기존 브랜드와 마찬가지로 수수료를 지불하고 백화점 등에 입점해 있다. 이들이 백화점을 선호하는 이유 중 하나는 실제 구매력이 있는 고객들이 많이 몰리는 곳이고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통망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또 제대로 보여주려면 초기투자비용만 몇십억원씩 들어가는 가두점 오픈에 비해 판매금액의 약 30% 내외의 수수료만 내면 되기 때문에 비용 부담이 덜하다는 측면도 있다.

 

유통 문제야 투자비 절감을 위한 기업의 영업 전략이라는 의견도 있지만 콘텐츠를 구성하는 과정에서의 문제는 문제점이 많다는 것이 업계의 시각이다.

 

대부분의 해외 유통업체나 심지어 국내 온라인 멀티숍 사이트들조차 글로벌 스탠다드에 맞춰 판매가의 40~50% 수준으로 사입하는 반면 국내 셀렉트숍은 거의 대부분이 위탁제로 운영되고 있다. 재고 부담은 지지 않으면서 최대한 많은 콘텐츠를 확보하려는 계산이다. 일부 해외 브랜드와 몇몇 디자이너들이 사입을 고수하고 있지만 비중은 크지 않다.

 

결국 패션기업은 상품(콘텐츠)을 구성한다는 명목으로 콘텐츠(디자이너, 브랜드)로부터 수수료를 떼고, 유통 업체는 판매해주는 대가로 수수료를 받는다.

 

가령 판매가 10만원짜리 상품을 팔았다고 할때 (평균적인 기준으로) 백화점 2만5000원, 패션기업 2만5000원, 콘텐츠 5만원을 나눠 갖는다는 셈이 나온다. 문제는 제조 원가와 재고 부담은 모두 콘텐츠의 몫이라는 점이다. 제조 원가 30% 가량과 재고 비용을 감안하면 경우에 따라 손실을 보기도 한다. 그러나 백화점과 패션기업이 나눠 갖는 2만5000원은 변함이 없다. ‘갑-을-병’, 또는 ‘슈퍼갑-갑-을’을 거치는 세계에서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기형적인 구조가 만든 폐해다.

 

백화점, 직매입으로 상생모델 만들까?
그렇다면 유통업체가 책임지고 자기주도형으로 셀렉트숍 비즈니스를 업그레이드시킬 수 있는 가능성은 없을까?

 

이미 사입 유통 시스템이 뿌리깊게 자리잡은 해외의 사례를 찾아보자.

 

영국 런던의 해러즈(Harrods)백화점은 해마다 새로운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그들이 성장할 수 있도록 적극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는다. 디자이너의 상품을 사입해 판매하는 것은 물론 경쟁력을 갖출 수 있도록 컨설팅도 해준다.

 

런던패션위크와 같은 기간에 열리는 세인트마틴 졸업작품전시회에서 월등한 실력을 갖춘 1명의 학생에게 ‘해러즈상’을 시상하고 디자이너의 작품을 사입한다. 수상자에게는 상금은 물론 해러즈백화점에서 자신의 옷을 판매할 수 있는 기회까지 생기게 되는 것이다.

 

이미 유명세를 타고 있는 브랜드가 아닌 성장 가능성이 큰 디자이너를 발굴하고 또 시장에서 제대로 성장할 수 있도록 유통업체가 책임지고 자기주도형 비즈니스를 실천하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한국인 디자이너 이정선 씨는 국내에서는 빛을 보지 못하다 세인트마틴 졸업전에서 해러즈상을 수상한 후 탄탄 대로를 걷고 있다. 오히려 “세인트마틴에서 해러즈상을 수상했다”는 소식에 그를 눈여겨 보지 않았던  국내 언론과 패션기업들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런던에서 「J.JS.LEE」라는 브랜드로 활동 중인 이 씨는 “해러즈백화점이 상품을 사입하기 시작하면서비로소 제대로 디자인 오피스를 운영할 수 있었다”면서 “특히 옷을 사입해가는데 그치지 않고 가격 책정부터 디자인의 방향까지 의견을 나누면서 디자이너들이 자립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컨설팅해주는 모습이 인상적이었다”고 말했다. 이 씨는 올해 삼성패션디자인펀드 수혜자로 선정돼 런던에서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메이저 기업들의 변신
다양한 시도 긍정적 … 장기적으로는 ‘글쎄’
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메이저 기업들이 하나둘 셀렉트숍 비즈니스를 시작하면서 다양한 형태의 셀렉트숍이 마켓 테스트를 하고 있다. 여러 가지 형태의 시도는 긍정적이지만 백화점 입점으로 인한 수수료 부담 문제와 전문인력 부재, 운영 시스템 미비 등으로 인해 장기적으로는 성공가능성이 높지 않다는 게 업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한 중견 여성복 기업에서 전개 중인 셀렉트숍 A는 오픈 전부터 이슈를 만들며 업계의 관심을 한몸에 받았다. 서울 중심 상권의 한 백화점에 입점한 A 는 오픈 첫날 기대 이상의 매출을 기록하며 순탄한 출발을 예고했다. 국내외 도매시장 사입 상품과 해외 인기 브랜드를 중심으로 각종 라이프스타일 아이템을 구성해 젊은 여성 소비자들의 발길이 이어졌다. 그러나 점점 추가 물량 공급에 어려움을 겪으면서 현재는 동대문 사입 상품의 비중이 절반 이상 차지하고 있다. 다행히 소비자들의 반응이 좋아 높은 매출을 기록하고는 있지만 백화점 수수료와 입점 업체 수수료 등을 감안하면 장기적으로 수익을 기대하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또다른 여성복 기업이 운영하고 있는 셀렉트숍 B는 해외 브랜드와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를 골고루 구성해 색다른 재미를 선보였다. 오픈 초기 일평균 매출이 600만원을 기록하는 등 기대 이상이라는 평을 받기도 했다. 이례적으로 사입 구조로 매장을 운영했으나 몇몇 입점 브랜드들로부터 50%가 넘는 높은 수수료를 받는 등 위탁 형태도 병행했다. 최근에는 모두 완사입으로 바꾸는 추세지만 입점 브랜드가 많아지면서 관리가 잘되지 않는 등 문제점을 드러내고 있다.
대기업에서도 셀렉트숍에 대한 관심이 높지만 운영 방식에 대해서는 기존의 방식을 버리지 못하고 있어 적지 않은 마찰을 일으키고 있다.

 

한 대기업은 자사 브랜드 매장의 일부를 할애해 잡화 브랜드를 입점시켜 셀렉트숍 비즈니스를 테스트하고 있다. 매장 입지 여건이나 브랜드 파워 등 여러 측면에서 매출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어 어느정도 성공적이라는 평이다.

 

하지만 대리점 사업에 적용되던 방식으로 셀렉트숍을 운영하면서 취약점이 나타나고 있다. ‘원 브랜드 원 숍’에 길들여진 매장 점장 등 세일즈 직원들이 각각의 입점 브랜드를 개별적으로 관리하는 것에 적응하지 못하는 것이다.

 

이 매장에 입점한 한 업체 관계자는 “일단 ‘남의 브랜드’라는 생각이 깔려있어 상품관리나 매출관리에 소홀해지고 대금 결제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것 같다”며 “매번 체크할 때마다 결제금액 차이가 적게는 몇십만원에서 많게는 몇천만원까지 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다른 입점 브랜드 관계자는 “매장에 재고 문제로 전화를 했다가 황당한 경험을 했다”면서 “점장이 잠깐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귀찮아 죽겠다는 식으로 혼잣말을 하는데, 이래서야 앞으로 계속 믿고 맡길 수 있을지도 의문”이라고 토로했다.

 

유통 패러다임 대전환
리테일 시대에 사입은 선택 아닌 필수
유통 패러다임이 대전환을 맞고 있다. 괜찮은 브랜드 하나 만들어 대리점 사업으로 볼륨을 확대하고 백화점 입점으로 브랜드 인지도를 올리던 시대는 막을 내리고 있다는 얘기다.

 

인터넷과 모바일의 발달은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은 급격하게 변화시켰다. 지극히 인디비주얼한 취향을 가진 요즘 소비자들은 자신을 만족시켜줄 쇼핑 공간으로 온라인 쇼핑몰이나 셀렉트숍으로 눈을 돌리고 있다.

 

결국 기존에 브랜드를 운영하던 방식으로 셀렉트숍 비즈니스를 해서는 더이상 소비자들을 끌어들일 수 없다. 새 술은 새 부대에 담아야 하듯 패션 기업들도 새로운 유통 환경에 맞는 새로운 운영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 리테일 비즈니스에 적합한 디자인팀 구성, 전문 인력 보강 등 사업 구조 전반에 걸친 변화가 필요하다.

 

먼저 매장 운영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 리테일 시대에 셀렉트숍 사업을 하고 있는 패션기업에게 사입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콘텐츠를 적극적으로 사입하고 ‘내 상품’이라는 책임감을 밑바탕으로 해야 리테일에 집중할 수 있다. 즉 유통업체인 셀렉트숍이 주도적으로 상품을 사입하고 판매 및 홍보까지 전담해야 리테일이 정착될 수 있다.

 

지난해 3월 강남 압구정동에 오픈한 셀렉트숍 ‘보이플러스’는 100% 사입제로 운영하고 있다. 사입을 하면 입점 브랜드 입장에서는 재고 부담이 없어 좋고, 유통업체는 온전히 판매에만 전념할 수 있어 좋다.
현재 ‘보이플러스’에는 총 20개 브랜드가 입점되어 있으며 위탁을 원하는 일부 브랜드를 제외하고는 17개 브랜드를 모두 완사입했다.

 

김천규 매니저는 “사입으로 운영하는 것이 리스크는 따르지만 책임감 있게 상품을 판매 관리할 수 있고 입점 브랜드 입장에서는 재고 부담이 없어 좋다”며 “특히 바잉만 잘 이루어진다면 더 큰 마진을 이윤을 남길 수 있다”고 말했다.

 

리테일 비즈니스에 적합한 디자인실 조직 문화 개선에 대한 목소리도 높다. 현재 상당수 국내 패션기업은 디자인 디렉터 등 한 두 사람에 의해 디자인이 결정되고 디자이너들은 연차에 따라 주어진 틀 안에서 디렉터의 지시를 수행하는 구조로 조직 문화가 형성돼 있다. 또 신입 디자이너의 경우 ‘피팅 필수’라는 옵션이 달려있기도 하다.

 

과거 권위주의 시절의 상명하복 구조가 아닌 각자의 개성과 능력을 인정하고 창의력을 최대화할 수 있는 신바람나는 문화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그것이 곧 셀렉트숍을 찾는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고, 리테일 시대에 적합한 디자인 전문 인력을 만드는 길인 것이다.
또 셀렉트숍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패션 기업들이 제대로 적응하기 위해서는 리테일 전문 인력 양성이 시급하다. 스토어 머천다이저, VMD, 슈퍼바이저 등 분야별로 특화된 새로운 스페셜리스트의 역할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일부 직영점을 많이 운영하고 있는 패션 기업에서는 리테일 전문 인력에 대한 필요성을 간파하고 적극적으로 양성하고 있지만 아직은 턱없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보수적인 교육 기관에 의존하기 보다는 산학협력 등 방법을 통해 실무에 강한 리테일 전문 인력을 키워야 한다”고 조언한다.

 

김천규 ‘보이플러스’ 매니저는 “외국은 매장 허드렛일부터 시작해 한단계씩 천천히 올라가는데 우리나라는 해외 유학 다녀온 사람들이 현장 실무도 모른채 떡하니 중간관리자로 입사한다”며 “좋은 매장 환경에서 제대로 교육받고 성장한 리테일 전문 인력들이 많이 생기고 또 셀렉트숍도 책임감을 갖고 인력 양성에 앞장섰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말했다.
 

 

 

패션인사이트 2011년 9월 23일  http://www.f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