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 만난 동대문, ‘브랜드’로 진화하다
피트인 발굴 업체 월매출 1억원…백화점이 탐내는 뉴 콘텐츠 등극
동대문의 패션업체들이 롯데피트인이라는 새로운 채널을 통해 브랜드로 입지를 다져가고 있다. 사진은 ‘앤도르’ 매장
동대문發 브랜드가 침체된 패션 시장에 활기를 불어넣어 줄 ‘뉴 콘텐츠’로 주목 받고 있다.
빠르고 안정된 소싱력을 갖춘 동대문 업체들이 롯데피트인(이하 피트인)의 전폭적인 지지 아래 브랜딩에 성공하고 있는 것. 이들은 요즘 백화점에서도 찾아보기 힘든 억 단위 매출을 기록하며 바이어들의 러브콜을 한 몸에 받고 있다.
◇ 브랜드로 도약하는 동대문
롯데자산개발의 피트인은 동대문도 브랜딩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1층에 자리잡은 ‘앤도르’, ‘나무그림’, ‘스튜디오 화이트’ 등은 싸고 트렌디한 옷을 빠르게 공급하며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아 월 1억원을 상회하는 매출을 올린다.
‘앤도르’는 로맨틱 컨템포러리를 콘셉으로 한 의류·잡화를 편집 구성해 10~40대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여성들을 포용한다.
‘나무그림’은 70% 이상의 상품을 자체 제작해 차별화된 콘텐츠로 국내외 소비자들에게 어필하고 있으며, ‘스튜디오 화이트’는 심플하고 베이직한 스타일의 의류로 다수의 단골을 확보했다.
피트인 매장을 기반으로 유통망을 넓혀가는 브랜드들도 나오고 있다. ‘제이케이’는 지난 5월 피트인 동대문점에 1호점을 오픈한 뒤 경희대 근처에 2호점을 오픈했다. 이후 브랜드의 가능성을 인정받아 디큐브시티 신도림점, 현대백화점 중동점, 롯데 영등포점 등 백화점 매장에도 잇달아 입점하며 10여 개의 유통망을 확보했다.
안경 편집 매장인 ‘아프리카’ 도 피트인에 첫 선을 보인 뒤 2~3개 매장을 순조롭게 확보했다. 남성 의류 편집숍 ‘RHP’도 피트인 매장을 본 백화점 바이어들의 입점 문의가 잇따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제이케이’ 매장
◇ 롯데 프리미엄이 브랜딩 발판 마련해
피트인에서 주목받는 이들은 평균 10~15년간의 동대문 도소매업 경력을 갖춘 업체들이다. 이 업체들은 브랜드화에 대한 욕구는 갖고 있었지만 백화점의 높은 수수료와 홍보 자금 부족 등의 문제로 쉽사리 도전할 수 없었다.
피트인은 이같은 동대문 업체의 고충에 귀기울여 절충안을 내놓았다. 백화점 수준의 쾌적한 쇼핑 환경의 매장을 25%대의 수수료에 제공했다. 또 빠른 소싱이 관건인 동대문의 특성을 감안해 월 2회 결재를 진행한다. 경험이 부족한 업체들을 위해 브랜드 콘셉이나 인테리어 방향 등에 대해 조언을 하기도 했다.
피트인 관계자는 “일부 입점 브랜드 중에는 보증금을 지불할 형편도 못되는 곳들도 있었다”며 “50%만 받고 추후 판매대금에서 결재하거나 대출을 받을 수 있을만한 곳을 소개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최근 피트인은 롯데몰 김포공항점에 편집숍을 오픈하며 또 다른 가능성을 제시했다. 동대문 상권에서 인기있는 9개의 패션·잡화 브랜드를 한 곳에 모아 판매한 결과 오픈 한 달만에 4억원의 매출을 올리는 기염을 토한 것이다. 기존 점포 매출의 2 배가 넘는 수치다. 이는 롯데가 보유한 아웃렛, 대형마트, 온라인 몰 등 다양한 채널에 적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또 다른 관계자는 “롯데몰 김포공항점의 편집숍은 여성복만 취급하지만 동대문에는 수많은 업체들이 존재하는 만큼 다양한 콘셉의 매장을 선보일 수 있을 것”이라며 “남대문의 경쟁력 있는 아동복 브랜드에게도 협력을 제안하고 있어 향후 여성, 남성, 아동까지 모두 아우를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
◇ 동대문의 저력 활용한 ‘시부야 109’
불황 속 새로운 형태의 채널을 제안해 스타 브랜드를 양성해낸 사례는 일본 시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일본의 대표 쇼핑몰 ‘시부야 109’다. 이 쇼핑몰은 고급화된 백화점에 맞서 10~20대의 젊은 여성을 타깃으로 트렌디한 옷을 저렴한 가격에 공급하며 2000년대 초반부터 일본의 트렌드 발신처로 떠올랐다.
이때 떠오른 루키 브랜드가 ‘마우지’, ‘에고이스트’, ‘세실맥비’, ‘리즈리사’ 등이다. 섹시, 글래머러스 혹은 소녀스러움 등 확고한 콘셉의 의상과 인테리어, 그리고 모델같은 외모를 자랑하는 카리스마 사원으로 여심을 단숨에 사로잡았다.
‘시부야 109’의 작은 점포에서 시작한 이들 브랜드는 이후 일본 패션계를 주름잡는 메가 브랜드로 성장했다. ‘세실맥비’를 전개하는 재팬이미지네이션은 현재 9개 브랜드를 보유한 여성복 전문 회사로 규모를 키웠다. 지난해 매출 규모만 무려 237억엔(한화 2453억원)에 달한다.
일본, 중국, 홍콩 등에 348개 점포를 운영하는 ‘마우지’의 바로크 재팬리미티드는 지난해를 글로벌 사업의 원년으로 삼고 본격적인 해외 시장 공략에 나섰다. 지난해 4월에는 도쿄 하라주쿠에 ‘쉘터 도쿄’를 오픈하고 가치관, 세계관 등을 담아 글로벌화의 거점으로 삼고 있다. ‘아주르 바이 마우지’를 통해 중국 시장을 적극적으로 공략하고 있는 중이다.
이러한 신화의 배경에는 동대문의 힘이 깔려있다. 원단 발주부터 생산까지 2~3일이면 소화해내는 동대문의 빠른 기동력을 발판삼아 브랜드를 키워온 것이다.
‘시부야 109’에서 ‘메이드 인 코리아’가 붙은 상품을 심심치 않게 찾아볼 수 있었던 것도 이같은 이유 때문이다.
◇ 불황을 이기는 ‘윈윈 전략’
피트인과 ‘시부야 109’의 브랜드 육성책에는 많은 공통점이 있다.
우선 이 둘은 핵심 상권을 확보에 유리하다. 피트인은 대규모 유통사인 롯데 계열사인만큼 도심 주요 상권부터 최근 개발 중인 교외 상권까지 접근성이 좋은 편이다. 피트인 동대문점을 오픈할 때도 2·4·5호선 트리플 역세권인 구 패션TV를 확보하기 위해 수개월간 소유주들과 협상을 벌였다.
‘시부야 109’ 또한 도쿄 시부야역의 3분 거리의 중심 상권에 있다. 이 쇼핑몰을 운영하는 도큐 몰즈 디벨롭먼트는 도큐 상업개발과 지하철 도큐센(東急線)을 중심으로 쇼핑센터를 운영하는 도큐머천다이징 앤 매니지먼트가 합병된 회사로 도큐센을 중심으로 한 역세권 확보에 우위를 선점하고 있다.
이들은 이러한 주요 상권의 채널을 백화점 대비 저렴한 비용에 이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규모가 작은 신규 브랜드들이 성장할 수 있는 발판을 제공했다.
콘텐츠의 다양성을 갖췄다는 점도 비슷하다. 피트인은 지하 3층 지상 8층 규모에 150여 개의 테넌트를 채웠으며, ‘시부야 109’는 지하2층, 지상 8층 건물에 120개 점포가 들어서 있다.
입점 브랜드들은 저마다 확고한 콘셉으로 10~20대 영소비자를 공략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피트인이 ‘시부야 109’처럼 새로운 패션의 메카가 될 수 있을지는 조금 더 지켜봐야한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패션 업계 관계자는 “이제껏 영플라자 등 많은 쇼핑몰들이 ‘시부야 109’를 벤치마킹 삼아 영소비자 층을 공략해왔다”며 “피트인이 지속적으로 스타 브랜드 육성에 성공하며 제2의 ‘시부야 109’가 될 수 있을지는 두고봐야할 것 같다”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수수료를 점차 높여 신규 콘텐츠 진입의 장벽을 높여온 백화점의 전철을 밟지 않기를 바란다”며 “브랜드 또한 확고한 자신만의 콘셉을 유지해야만 장기적으로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고 조언했다.
2013년 12월 16일 패션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