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랜드 유전병 (HEREDITARY DISEASE, 遺傳病)

2014-02-04 00:00 조회수 아이콘 28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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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 유전병 (HEREDITARY DISEASE, 遺傳病)

Hereditary Brand2


워커 브랜드 '대너'는 브랜드 역사를 만드는 장인 정신을 통해 헤리티지 브랜드가 될 수 있었다.


대부분의 사람이 브랜드가 브랜드되는 시간을 기다리지 못한다. 브랜드를 만들어 놓으면 빨리 유통시켜서 단기간에 돈을 벌고 싶어한다. 이런 사람들의 꿈은 상표를 브랜드라는 젖소(CASH COW)로 만들어서 우유(현금)를 얻는 것이다. 하지만 이런 사람들은 보스턴 컨설팅의 메트릭스에서 보여주는 젖소 옆 칸에 개(DOG)가 있다는 것을 보려고 하지 않는다. 젖소 다음에 죽은 개가 어떤 의미인지를 모르는 것이다.

부모에게 브랜드를 물려 받은 경영자 혹은 이제 브랜드를 시작하려는 자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 그들에게 말하고 싶은 것은 브랜드 경영을 한다면 당장 머리속에 있는 젖소라는 개념을 잊어야 한다.

브랜드는 기업의 소가 아니라 기업의 헤리티지다. 평균 수명 15년인 기업은 지속 가능을 꿈꾸지만 브랜드는 이론적으로 영속 가능하다. 브랜드를 가지고 있는 수많은 기업들은 사라지지만 브랜드는 시간이 가면 갈 수록 강해지고 있다. 그러나 높은 점유율에 꾸준한 매출을 만들려는 젖소 브랜드를 생각하는 것은 유전병에 걸린 낡은 재래식 사고 방식이다.

이런 생각은 ‘시간은 돈’이기 때문에 ‘현금 보유와 흐름 , 목표 매출 성장’이라는 개념으로 브랜드를 바라본다. 이런 사람들에게 브랜드는 성장 촉진 호르몬을 접종한 젖소일 뿐이다. 헤리티지를 말할 수 있는 브랜드를 살펴보면 처음의 시작이 젖소 따위의 개념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브랜드가 브랜드가 되지 못하고 점유율 높은 상표로서 유전병에 걸려 짧은 인생을 끝마치는 것은 무엇보다도 브랜드에 관한 ‘생각의 유전’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헤리티지 브랜드를 만들 수 있을까?

브랜드의 탄생과 헤리티지에 관해서 근원부터 생각해야 한다. 첫 번째는 브랜드를 더 이상 10년 수명을 가진 젖소로 보지 말고 100년이 넘는 헤리티지로 보아야 한다. 브랜드 경영이란 100년을 바라보면서 지금 그 일을 하는 것이다. 두 번째는 브랜드의 생명은 생산자가 주장하는 품질이 아니라 생산자와 사용자의 이야기다.

연속적인 이야기의 연장이 브랜드의 수명이다. 따라서 더 이상 이야기를 공유할 수 없는 소비자와 타깃이라는 개념을 버려야 한다. 소비자와 타깃은 이야기를 만들 수 없다. 지금까지 소비자라고 불렀던 대상을 이웃과 사용자라고 생각해보자. 브랜드를 통해서 그들과 어떤 이야기를 나누고 만들어갈 이야기는 무엇인가를 생각해보자. 이야기가 만들어지는 브랜드는 절대로 죽지 않는다. 세 번째는 브랜드가 도대체 무엇인지를 다시 정의해보고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를 생각해보자.

브랜드를 공부해야만 하는 이유는 세상이 브랜드로 이루어졌기 때문이다. 아마존 밀림 지역에서 자급자족을 하는 소수 부족을 제외하고 60억명의 지구인은 매일 브랜드를 사고 팔면서 사용하고 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브랜드를 소비하는 우리는 브랜드에 대해서는 전혀 공부하지 않고 있다. 그저 브랜드에 대해서 공부하는 사람은 브랜드를 만드는 사람이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다비트 보스하르트는 1997년에 발간한 자신의 저서 《소비자의 미래》에서 지금의 소비를 예측했다. 그의 예언을 들어보자. ‘소비는 타인과 나를 구별하는 수단임과 동시에 나를 표현하는 수단이다. 소비는 우리의 사고 및 행위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는 동시에 그것들의 구현방식을 지시한다. 현대사회의 유일한 윤리학은 쾌락주의 것처럼 보인다. 새로운 인간이 존재하지 않는 것과 마찬가지로 새로운 소비자도 없다.

단지 변화된 소비 성향만 존재할 뿐이다. 20세기 역사는 소비의 역사이며 급속도로 성장하고 팽창한 복지의 역사이다. 오늘날처럼 잘 살게 된 적은 일찍이 없었다. 향후 10년간은 소비주의의 순수한 형태가 대두되는 시기로 볼 수 있다. 소비함에 있어 더 이상 언떤 제동장치도 금기도 없는 시대가 열릴 것이다. 소비사회의 종말은 곧 민주주의의 종말이다.’라고 말했다.

언제부터인가 소비가 자신의 정체성이라고 인식하게 되었다. 이 소비철학은 대중매체, 드라마 그리고 자유 경쟁 민주주의의 합성 지식이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니다. 30여년 전에 에리히 프롬이 예언했던 “현대 소비자는 ‘나=내가 가진 것=내가 소비하는 것’이라는 등식에서 자신의 실체를 확인하는 지도 모른다”의 묵시가 이제는 완전히 드러나게 되었다.

소비자 행동 연구자인 러셀 벨크도 “소비자들은 브랜드를 마치 살아 있는 대상인 것처럼 인간적인 특성, 즉 성격을 부여한다. 소비자는 브랜드의 상징으로 자아 획득을 경험하고 소유물을 자신의 일부로 간주한다. 따라서 우리가 갖고 있는 것이 바로 나 자신이다”라고 증언(?)하였다.

철학자 장 보드리야르는 소비자가 특정 브랜드를 소비하면 브랜드의 계층과 소비하는 소비자 집단과 같은 계층으로 인식하는 파노플리 효과(EFFECT DE PANOPLIE)를 이야기했다. 그는 명품 브랜드가 현대사회를 다시 계급사회로 나눈다고 주장했다. 그의 주장에 의하면 브랜드는 인간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시기와 질투 그리고 평가와 소속감을 매우 세련되게 표현해주고 있다는 것이다.

물고기가 물을 이해할 수 있을까? 그렇지 못할 것 같다. 그렇다면 사람은 중력을 이해할 수 있을까? 사람들도 지구의 중력을 익히 알고 있지만 그 힘의 실체는 전혀 느낄 수 없고 알지 못한다. 불과 200년 전만해도 과학자들은 너무나도 간단하고 심오한 질문을 스스로에게 했다. 물질은 무엇으로 이루어졌고, 왜 나무는 초록색이며, 왜 밤은 존재할까? 이런 질문의 대답은 눈으로 보았던 것과는 다른 자연법칙을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지구가 원형이고 태양이 지구를 돌지 않는다고 주장하면 화형에 처해지는 시절도 있었다. 이런 현상을 부정했던 가장 큰 이유는 자신이 눈으로 보는 것과 다른 이론을 제시했기 때문이다.

브랜드로 이루어진 세상에서 우리는 살고 있다고 한다면 과장되게 들리는가? 잠깐 생각만하면 이해가 쉽다. 이 글을 보고 근처에 이름이 없는 물건이 얼마나 될까? 직장과 직업이 있다면 브랜드 안에 이미 있는 것이다. 이렇게 브랜드가 지천에 깔려 있음에도 불구하고 브랜드의 힘과 영향력을 깨닫지 못하는 것은 브랜드가 우리의 그 어떤 본능과 맛닿아 있기 때문이다. 브랜드를 만들고, 소유하고 누리는 것이 너무나 자연스러운 것은 어떤 이유일까?

심리학자는 아니지만 영문학자인 C.S.루이스는 여러 소설을 쓰면서 깨달았던 통찰로 인간의 기본 욕구를 이렇게 설명했다. “인간이 선과 악의 경계를 넘도록 하는 강력한 힘은 집단에서 배척당하길 거부하고 소속되고자 하는 기본적인 욕구에서 비롯한다.” C.S.루이스가 깨달은 내용에 대해서 정신분석학자이자 사회심리학자였던 에리히 프롬은 그의 저서 《소유냐 존재냐》에서 인간이 서로 ‘연대’하려고 하는 이유는 그것이 인간의 ‘본능’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타자와의 일체감을 체험하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은 인간이라는 종 특유의 실존 조건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인간의 행동을 낳는 가장 강력한 원동력의 하나”이기 때문에 인간이 완전한 고립감에 빠져서 미쳐버리지 않기 위해서는 새로운 합일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것이다. 그가 말한 인간의 일체감에 대한 욕망은 어머니, 종족, 나라, 계층, 종교, 직업상의 단체 등과의 공생적 유대로 이루어진다.

2014년 2월 4일 패션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