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컬쳐 헤리티지’,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닌 활용해야 할 가치
고학수 현디자인 연구소 연구원
‘컬쳐 헤리티지’란 요즘 유행하는 ‘인문학’이라는 용어만큼이나 뜬구름 잡는 것 같이 정의 내리기 어려운 개념이다. 당장 먹고 사는데 지장을 주지 않으니 깊이 생각해 볼 생각 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애매모호한 ‘인문학’의 경제적 가치를 인식하기 시작한 것처럼, ‘문화 유산’도 미래의 성장 동력이라는 점에 많은 사람들이 동의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당장 우리의 전통 문화, 한국 문화를 활용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라면 도대체 어떻게 활용해야 할 지 막연해 진다.
‘문화 유산’이란 무엇인가? 두 단어의 합성어이니 따로 떼어 살펴보자. 우선 ‘문화’란 한 사회 안의 개인이나 인간 집단이 자연을 변화시켜온 물질적·정신적 과정의 산물이라고 한다. 즉, 인간이 자연으로부터 만든 인위적인 모든 것이며, 자연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이해해도 무방하다.
어원을 살펴보면, 문화는 영어로 ‘Culture’라고 하는데 이 용어는 라틴어인 ‘Cultura’에서 유래했다. 라틴어 ‘Cultura’는 매우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는데, 대체로 경작, 거주, 연습 등의 뜻을 지니고 있다. 영어인 ‘Culture’ 역시 재배, 경작의 뜻을 지니고 있으며, 확대하면 인간의 심성을 가다듬 인격을 기른다는 뜻도 포함하고 있다.
중국에서도 일찍이 한자로 된 ‘문화(文化)’라는 용어가 있었다. 중국의 고대 문헌 속에서 등장하는 '문화(文化)'는 ‘문(文)’과 ‘화(化)’가 서로 결합되기 이전에 이미 독자적인 어원체계를 지니고 있었다.
여러 색이 한데 어우러져 아름다운 문양을 연출한다는 의미의 '문(文)'은 시대를 거치면서 점차 언어문자의 상징 부호로 인식되거나 윤리행위적인 측면에서 수식이나 인위적 수양의 의미를 띠게 되었고, 이로부터 더욱 추상화되어 '미(美)' '선(善)' '덕행(德行)' 등을 지칭하는 용어로 쓰이게 되었다. 이렇듯 동서양의 문화라는 단어안에는 이미 자연을 기반으로 발달한 의·식·주 처럼 물질적인 것, 신앙 ·윤리 ·예술 ·학술 같은 정신적인 것, 정치·경제·법 같은 제도적인 것이 포함되어 있었다.
‘유산’이란 원래 선인(先人)이 남긴 재화와 보물 ·가옥 ·토지 등 화폐가치가 있는 것을 가리켰으나, 널리 문화가치가 있는 것까지도 포함하는 뜻에서 이 용어를 쓴 것은 오래되지 않았다. 근래 세계 여러 나라에서는 자국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규제를 강화했으며, 1962년 한국에서도 문화재보호법을 제정·공포하였다. 그 후, 문화 유산이라는 말이 문화재란 말로 대체 ·사용되고 있는 듯하다.
문화 유산을 국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은 제 2차 세계 대전 중 논의되기 시작했다. 무·유형의 세계문화유산을 지정하는 유네스코(UNESCO)가 1942년 제 2차 세계 대전 중 그 설립에 대해 논의되었다거나, 전쟁 중에도 적국의 문화 유산을 지키기 위해 폭격을 피하거나, 또는 대규모의 약탈을 했다는 사실 등은 두번 다시 원본처럼 만들 수 없는 문화재의 가치를 누구나 인정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러한 문화 유산 앞에 ‘한국’, 또는 ‘전통’이라는 단어가 들어가면 입장은 크게 둘로 나뉜다. 한국인에게 ‘전통 문화’에 대한 의견을 물으면 ‘우리 것이 좋은 것이여’, 또는 ‘서양 것은 화려하고 보기 좋은데 우리 문화는 보잘 것 없다’는 극단적인 두 가지 입장으로 정리 된다.
하지만 문제는 어느 쪽도 우리 문화가 좋다면 그것이 왜 좋은지, 반대로 외국의 것이 좋다면 왜 그들 문화는 더 좋아보이는지 알려거나 공부하려 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는 사이 우리가 마냥 부러워하던 해외 명품 브랜드, 세계적인 디자이너들은 그들의 문화 유산을 자유자재로 활용하며 브랜드 가치를 키워나갔다.
‘돌체 앤 가바나’의 컬렉션을 보면서 도대체 시칠리아 섬이란 얼마나 매력적인 곳이길래 저렇게 끊임없이 디자이너의 영감의 원천이 될까 궁금해진다. 낡고 다 부서진 고대 문화 유적에서부터 휘황찬란했던 비잔틴·바로크 문화, 전세계인들에게 사랑받는 이탈리아의 음식문화까지 패션으로 표현되지 않는 문화 유산은 없었다.
우리에게는 다 똑같아 보이는 유럽이라도 각자의 개성을 분명히 하기 위해 그들은 더욱 치밀하게 자국의 독창적인 역사를 공부했다. 같은 벨기에 출신임에도 ‘라프 시몬스’와 ‘앤 드뮐미스터’의 디자인의 방향이 그렇게 다른 것은 각자 취한 문화 유산이 달랐기 때문이었다. 라프 시몬스는 벨기에가 낳은 세계적인 초현실주의 작가 르네 마그리트나 아르누보 같은 근대 예술을, 앤 드뮐미스터는 중세 고딕 시대의 건축과 어두웠던 사회상을 패션으로 승화시켰다.
꼭 역사가 깊은 문화 유산이나, 고귀하고 자랑스러운 문화여야 하는 것도 아니었다. ‘제레미 스캇’은 미국의 대중매체나 청바지로 대변되는 미국 젊은이의 문화를 비틀기도 했으며, ‘비비안 웨스트우드’는 영국의 전통이지만 지금까지도 깨트릴 수 없는 계급 사회에 대한 반항으로 펑크 패션과 문화를 부흥시키기도 했다. 하위문화로 치부되는 대중문화나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지속되는 불평등한 문화까지도 그들은 패션으로 승화시킨 것이다.
인도 출신의 ‘마니쉬 아로라’는 주류 패션 도시가 아닌 지역에서의 문화 유산 활용 방안을 성공적으로 보여줬다. 인도의 신화, 정신, 전통 복식과 장신구 등 전통 문화를 너무도 매력적이고 현대적으로 풀어내고 있다. 중요한 것은 세계에 보편적이면서도 매력적으로 알려진 문화를 끊임없이 발굴 해내고, 사람들에게 인식 될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선보여야 한다는 점이다. 그것이 브랜드의 힘이 되고 가치가 되었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왜 우리 것은 안돼?(Why not)’정신이다. 이렇게 세계적인 브랜드들에서 너무도 당연하게 자국의 문화 유산들을 다방면으로 활용하고 있는데, 왜 우리는 할 생각 조차 못하고 있는 것일까? 우선 스스로 문화 유산에 대한 딱딱한 벽을 깨야 한다. 전통 문화를 온전히 보존하고 지켜야 하는 것은 각 분야의 장인들이 할 일이다.
패션 브랜드는 당장 눈 앞의 트렌드나 이익이 아닌, 문화 유산의 잠재적 가치를 이해하고 지속적으로 지원해야 한다.
2014년 2월 10일 패션인사이트
이전글
![]() |
글로벌 SPA 2차 공습이 시작된다 |
|---|---|
다음글
![]() |
아웃도어, 여성복까지 진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