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흥시장 진출전략 '확' 바꿔라
현지화‧역 발상 등 ‘새 패러다임’ 필요
▲최근 신흥국 시장으로 급부상하고 있는 칠레의 중심도시 산티아고의 중심가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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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위기의 여파가 완전히 해소되지는 않았지만 ‘기회는 위기의 가면을 쓰고 온다’는 말이 있듯이 한국기업들도 과감한 시도로 신흥시장 진출의 기회를 잡아볼 필요가 있다. 전문가들은 신흥시장 진출에 대해 무작정 ‘뚝심’만 믿거나 저가공략만을 무기로 시장에 진출했던 이전의 투자전략에서 벗어나는 새 패러다임을 만들어야 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2008년 세계를 놀라게 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가장 뚜렷한 변화는 신흥국이 세계경제의 중심축으로 급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신흥국은 이제 세계의 시장으로 글로벌기업을 비롯한 경제 주체의 가장 중요한 목표로 떠오르고 있다. 2000년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이런 변화를 예측하기는 힘들었다.당시 신흥국은 향후 성장 가능성이 점쳐지는 국가일 뿐이었다. 그러나 지금은 선진 글로벌기업은 물론 한국기업에게도 없어서는 안되는 소중한 ‘보물’로 변했다.
이러한 모습은 패션산업뿐만 아니라 국내 수출산업 전반에 걸쳐 수출시장 개척을 위해서는 신흥국시장 진출을 염두에 두지 않을 수 없다. 최근 경기불황의 원인으로 빚어진 내수 불안을 말끔히 씻어줄 곳은 신흥국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각종 무역통계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한국기업의 수출에서 신흥국이 차지하는 비중이 매년 크게 증가하고 있다.
지난해 무역 규모를 보면 신흥국 시장은 전체의 72.8%를 차지하면서 한국의 주력시장으로 부상했다. 특히 섬유패션산업의 비중도 해마다 커지고 있다. 한국섬유산업연합회에 따르면 한국의 섬유패션부문에서 신흥국에 대한 의류 수출은 전년에 비해 크게 늘었다. 최대 교역국인 대 중국 수출이 26% 늘어난 것을 비롯해 베트남 68.7%, 인도네시아 44.7% 등의 신장세를 기록했다. 이런 추세에 힘입어 전체 수출액도 전년 대비 14.5% 늘어난 것으로 파악됐다.
이에 따라 코트라(KOTRA)는 최근 ‘신흥국 진출의 패러다임을 바꾸다’라는 보고서를 통해 신흥국 새 진출 전략을 제시했다. 보고서는 신흥국 소비시장의 키워드인 ‘볼륨존(Volume Zone)’에 대한 설명과 새로운 경영전략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으로 성공을 이끈 32개 글로벌기업 이야기를 중점적으로 게재했다.
새로운 신흥국시장 ‘볼륨존’ 등장
볼륨존은 연간 가계소득 5,000~3만5,000달러의 신흥경제 중간소득계층을 부르는 용어이다. 신흥국 중산층, 즉 볼륨존의 인구는 2006년 16억3,000만명이었으나 2030년까지 54억9,000만 명으로 성장할 것으로 추정된다. 볼륨존 소비자들은 소비활동으로 자신의 개성을 나타내는 경향이 있다. 그들을 사로잡기 위해서는 단순히 저품질•«저가의 제품보다는 현지 소비자들의 특성을 파악해 합리적인 가격에 품질이 뛰어난 제품으로 시장의 문을 두드려야한다는 것.
스웨덴의 대표 가구회사 이케아(IKEA)는 술이 금지된 현지사정에 따라 와인 잔을 주스 잔으로 변경하는 등 타 종교를 상징하는 제품은 라인업에서 과감히 제외하는 현지화 전략을 내세웠다. 또 젊은 볼륨존 고객을 공략하기 위해 유러피언 디자인 제품을 합리적인 가격에 선보이면서 2012년 가구•가정용품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흘러가던 시장 흐름이 뒤바뀐다면 신흥국의 독특한 수요에 맞춘 신제품이 전 세계 시장을 뒤엎을 수 있을까? 바로 이 생각이 리버스 이노베이션(Reverse Innovation)이다.
이 역발상 아이디어로 인도, 아프리카 등지에서 빛을 발하는 기업들이 늘어나고 있다. 배창헌 코트라
정보통상지원본부장은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세계경제의 흐름이 신흥국 시장으로 집중되면서 세계 기업의 관심은 부상하는 신흥국 시장을 어떻게 공략하느냐로 모아지고 있다”며 “이런 가운데 가장 주목 받고 있는 것이 바로 볼륨존(Volume Zone) 진출전략”이라고 강조했다.
현지인에 맞는 제품개발이 포인트
GE헬스케어는 기존 선진국에 도입했던 전략으로 초기 인도시장에 도전했으나 시장 점유율은 5% 미만에 그쳐 초기 진입에 실패했다. 그 후 인도에만 특화된 초음파 진단기기 ‘MAC 400’을 개발, 출시해 인도에서 폭발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다. 인도 외 전 세계적으로 1만5,000여대 이상의 매출고를 기록하면서 역혁신을 일으킨 대표적인 사례로 발돋움했다.
패션업체로는 스페인의 대표적 패션기업 자라(ZARA)가 불륨존 가운데 칠레에서 가장 큰 성공을 거뒀다. 자라는 산티아고의 가장 오래된 대형 쇼핑몰인 파르크에 아라우코(Parque Arauco)몰에 1999년 첫 지점을 설립한 이래 현재 칠레 내 8개 지점을 보유하고 있다. 2주마다 새로운 옷을 선보여 제품 주기를 짧게 함으로써 내구성 있는 옷 보다는 유행을 선도할 수 있는 중저가의 트랜디한 옷을 선보이는 것에 초점을 맞췄다.
중남미 사람들은 의복에 대한 지출이크고 같은 옷을 오래 입기보다는 유행을 따라가는 옷을 선호하므로 가격 대비 질이 우수하면서도 유행을 반영한 자라가 칠레 시장에서 환영을 받고 있다. 자라는 타깃 소비자 연령층과 비슷한 젊은 디자이너를 고용하고, 광고에 유명 인사를 활용하지 않는 방법으로 비용을 줄이는 것은 물론 인건비가 저렴한 아시아 지역의 제조사를 단기 계약으로 활용하는 전략을 구사해 큰 성공을 거두고 있다.
우리나라에는 리바이스라는 청바지 브랜드로 잘 알려져 있는 리바이 스트라우스(Levi Strauss)는 1953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창립한 글로벌 의류 업체이다. 2012년 기준 전 세계 5만여개의 매장에서 주력 브랜드인 리바이스(Levi’s)를 포함, 도커(Docker), 데니즌(Denizen), 시그내처(Signature) 등 4개 브랜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패션브랜드 리바이스, 역혁신 성공
리바이스는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선진시장의 경기 부진 속에 중국, 인도 등 아시아시장이 새로운 성장엔진으로 부상함에 따라 새로운 소비시장으로 탈바꿈하고 있는 중국을 주목했다. 중국은 금융부문의 대외 개방도가 높지 않아 글로벌 금융위기의 직접적인 충격을 받지는 않았다. 또 연간 경제 성장률이 낮아지고 있기는 하지만, 여전히 8%대의 높은 성장률을 보이고 있으며, 소비재 매출 총액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 추세다.
그러나 초기 중국시장 진출은 쉽지 않았다. 서구인의 체형에 맞는 리바이스의 고가 제품들은 중국에 진출한 각종 의류 브랜드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가 쉽지 않았다. 무엇보다 가격 경쟁력을 앞세운 중국 로컬 기업들은 자국민의 체형에 맞는 제품을 판매함으로써 현지인들의 신뢰를 사고 있었다. 리바이 스트라우스가 중국 소비자들의 지갑을 열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저렴하면서도 현지인의 체형에 맞는 제품을 개발할 필요가 있었다.
이를 위해 리바이스는 중국 소비자만을 겨냥한 ‘메이드 인 포 차이나(Made for China)’ 제품을 내놓기로 결정했다. 먼저 해결해야할 문제는 중국인의 체형에 맞는 청바지 제작이었다. 리바이스는 중국인을 포함한 아시아인의 체형 연구를 통해 아시아인이 상대적으로 엉덩이가 작고 다리 길이도 짧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역혁신 위한 새 패션브랜드 각광
이 연구 결과를 바탕으로 중국인의 체형에 꼭 맞는 제품 디자인에 들어갔다. 또 중국인에게 친숙한 이미지를 주기 위해 새로운 브랜드명을 청바지 원단인 ‘데님’과 한자어 ‘젠(禪)’을 결합한 데니즌(Denizen)이라고 명명했다. 명품 느낌이 나면서도 중저가로 판매된 데니즌에 대한 중국 시장의 반응은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리고 데니즌 브랜드에 대한 소비자들의 선호도가 높아지자 리바이스는 우리나라를 비롯한 인도, 싱가포르, 파키스탄 등으로 매장을 점차 확대해 나갔다.
한국기업이 리버스 이노베이션에 주목해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앞으로 기업이 직면하게 될 세계경제 생태계가 변화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에 따르면 선진국 경제성장률은 2008년0.1%에서 2009년 3.4%, 2010년 2.5% 수준이다. 하지만 신흥국 경제성장률은 2008년 5.8%에서 2009년 1.6%, 2010년 6.9%로 침체기가 짧고 회복세가 빠른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한국의 기업뿐만 아니라 세계 각국 기업들도 신흥국시장에 저가제품을 내놓는 오류는 여전하다.
기업의 저가 판매 전략으로 유통되는 제품 가운데 대표적으로 휴대폰이 있다. 신흥국에 진출한 외국 회사들은 자국에선 메인 제품을 출시하지만 신흥시장에선 기능과 사양은 다소 떨어지더라도 기본적인 제품의 콘셉트는 비슷한 보급형 휴대폰을 같이 출시하는 경향이 있다.
판매영역 좁히는 저가공략은 배제
이는 메인 제품을 구매할 정도로 구매력이 높지는 않지만, 비슷한 콘셉트의 제품을 구매하고 싶어 하는 소비자층을 공략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단순사양 제품의 저가 판매 전략은 신흥국 시장의 특수성을 고려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제품의 사양을 낮춰 판매함으로써 기업의 이윤을 창출하는 것에 더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에 현지시장에서 실패할 가능성이 크다. 다운 그레이드 제품 전략은 고소득층은 제외되고 저소득층 위주로 판매가 이뤄지는 제한성이 크기 때문이다.
외국기업들이 이러한 판매전략을 구사하는 이유는 신흥국 소비자들이 아직까지는 고가의 제품을 살 수 있는 여력이 충분하지 못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실제로 신흥국의 구매력 수준은 선진국에 비해 매우 낮은 것으로 파악됐다. 국제통화기금(IMF)이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2013년 중국 및 인도의 국민 한명 당 구매력 기준 평가치는 각각 1만11달러, 4,060달러로 미국, 독일, 일본 등과 비교했을 때 적게는 4배, 많게는 10배 가까이 차이가 있다. 글로컬라이제이션 전략이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글로컬라이제이션은 글로벌기업의 현지화를 뜻한다. 신흥국의 경제가 활성화되기 이전 선진국이 세계 경제의 주도권을 잡고 있을 때 만들어졌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하더라도 신흥국의 중산층 및 저소득층을 대상으로 하는 시장전략은 거의 존재하지 않았다. 그러나 세계 경제의 중심축이 바뀌면서 앞으로 우리 기업들이 맞이하게 될 신흥시장 내 주류 소비자는 그 동안 우리가 간과했던 중요한 소득 계층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볼륨존·역혁신, 신흥시장 진출에 도움
김선화 코트라 시장조사실 실장은 이러한 볼륨존과 리버스 이노베이션의 등장은 한국기업의 신흥시장 진출 전략 수립에 큰 도움이 될 것으로 내다봤다. 이 개념의 바탕에는 ‘현지 시장조사’가 면밀히 이루어져야 한다는 어려움이 있다. 패션업체를 포함해 신흥국 진출에 실패한 기업들은 목표 시장이 가지고 있는 특수성과 소비자의 니즈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김선화 실장은 “현재 신흥국 시장의 전망은 다소 어둡지만 장기적으로 인구구조나 소비패턴을 봤을 때 눈여겨 볼 필요가있다”며, “우리 기업이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서는 새로운 진출 전략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신흥국 가운데 최대 교역파트너인 중국은 성장보다는 개혁을 통한 경제 내실화에 주력할 것으로 전망됐다. 특히 소비와 도시화가 가속화되는 경향이 강해지면서 패션 등의 온라인유통, 지식서비스산업, 스마트SOC산업, 엔젤산업 등이 유망할 것으로 전망된다. 신흥시장은 과거보다는 낮지만 여전히 5% 이상의 경제 성장을 보일 전망이다. 이에 따라 지속적인 진출 노력이 필요하나, 정치 불안과 금융 변동성 등은 걸림돌이 될 것으로 보인다. 아세안(ASEAN)지역은 중산층 증가에 따른 소비시장, 도시화·산업화 가속에 따른 프로젝트 시장이 유망하다. 브라질은 2014년 월드컵과 2016년 하계올림픽을 개최한다. 러시아는 2014년 동계올림픽과 2018년 월드컵을 개최할 예정으로 이와 관련한 특수를 노려볼 만하다.
2014년 2월 13일 패션지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