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패션시장은 어느때보다 ‘불황’ ‘판매부진’ 등 부정적인 단어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현실적인 어려움은 알겠지만, 그 말속에는 모든 원인을 시장환경과 경쟁자에 미루고 싶은 심리가 강한 것도 사실인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환기인 지금이야말로 근본에서부터 패러다임을 바꾸고, 새로운 구조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이번 ‘패션 썰전’ 참석자들의 공통된 썰이었습니다.
이번 썰전은 휴가 막바지인 지난 6일 대치동 마세리아 커피숍에서 △글로벌 SPA 기업 전문 경영자 △중견 여성복기업 오너 경영자 △뷰티 브랜드 오너 경영자 △섬유패션 관련 단체 상무이사 △패션 경영 컨설턴트 등이 참석한 가운데 본지 정인기 편집국장이 사회를 봤습니다.
생생한 대화를 위해 익명 처리했음을 양해해 주십시오.
“어설픈 메스티지가 무너졌다”
A경영자: 최근 대형마트에 다니는 후배가 찾아왔는데, 가장 큰 고민은 그동안 매출의 주력이었던 야채와 생선, 쌀, 고기, 과일 등 식품 원재료가 안팔린다는 것입니다. 식품 원재료가 안팔리니 입점 고객이 줄고, 그로 인해 패션과 가전, 음료 등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죠.
B경영자: 참 아이러니하네요. TV에선 요리 프로가 높은 시청률을 자랑하고, 정우성이가 40만원짜리 후라이팬을 광고하고, ‘휴롬’ 매출이 뛴다는데 정작 식품 원재료는 안팔린다니 말이죠. 더한 아이러니는, 그런데도 냉장고는 1000리터짜리 대형을 찾는다는 것이죠. 식품 원재료는 안 사면서 냉장고는 대형으로, 프라이팬은 최고급으로 갖추는 것이 주부들의 심리라는 것이죠.
C임원: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서 근본 원인을 찾아야 할 것 같습니다. 멋진 후라이팬이나 냉장고를 사지만 요즘 주부들은 예전같이 요리를 하지는 않죠. 예전에는 주말에 아들 내외나 손자를 초청해 음식을 해먹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습니다. 단지 6개월에 한번 해 먹더라도 최고급으로 해 먹고 싶다는 것이죠. 이러다보니 ‘테팔’과 같이 오래쓰는 튼튼한 메스티지 브랜드가 안 팔립니다.
A경영자: 가전 뿐이 아닙니다. 자동차도 지구를 지배했던 그랜저가 안 팔립니다. 패밀리 레스토랑에서도 ‘TGIF’가 그렇고, 패션에서도 ‘폴로’와 ‘빈폴’과 같은 브랜드가 하락세입니다. 결과적으로 10~20년간 국내 소비를 지배했던 메스티지가 소멸하고 있고, 이는 라이프스타일 전반에서 동시다발로 일어나고 있습니다.
D컨설턴트: 성장기 시대에는 ‘어설픈 메스티지’가 막연한 기대심리를 등에 업고 성장할 수 있었지만, 지금과 같은 성숙기에는 명확한 생태적 지배력이 없다면 생존이 어렵다는 것을 시사하고 있습니다.
◇ 사회: 비싼 가전은 팔리는데, 식품 원재료가 안팔린다는 것은 가정에서 요리를 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A경영자: 소비자들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에서 출발해야 합니다. 요즘 한국에서도 브런치가 유행인데, 주요 고객이 50~60대 노부부와 30대 여피가 주를 이룹니다. 발렛주차비 5000원이 안 아까운 사람들이죠. 그럼 이들이 가정에는 어떤 후라이팬과 냉장고가 있을까요? 이들은 6개월에 한번 손님 초대를 위해 비싼 가전을 구매하지만 평소에는 요리를 하지 않죠. 그러니 대형마트의 본업이 위협받는 것이죠.
B경영자: 대형마트의 또 한가지 아이러니는 푸드코트가 8시면 문을 닫는다는 것입니다. 요즘 소비자들의 생활 패턴에서 구매력 높은 30~40대를 잡기 위해서는 오히려 하동관이나 오장동냉면 등과 제휴해서 24시간 영업하는 맛집을 입구에 구성한다면, 미니 냉면을 먹고 여유있게 쇼핑할수도 있지 않을까요? 아직도 대부분 대형마트들은 식품이나 음료, 가전을 키오스크로 가져가기 때문에 소비자들이 갈 수 있는 명분을 자기 스스로가 소멸시켜 버리고 있죠. 결국 대형마트의 적은 대형마트 스스로인 셈이죠. 고객을 특별한 사람으로 생각하지 말고, 자기 자신이나 가족으로 생각한다면 쉽게 답을 찾을수도 있을 겁니다.
“채널은 환경 최적화, 패션은 ‘매스 커스터마이즈’가 경쟁력”
◇ 사회: 요즘 편의점 시장이 유일하게 성장한다고 합니다. 한국의 편의점 미래가 밝을까요?
D컨설턴트: 과거 일본 편의점의 주고객은 20대와 40대 남자였죠. 근데 이들이 10년전부터 편의점을 안가기 시작했고, 포르노 잡지도 안팔렸습니다. 이 즈음 일본도 지금 한국과 유사하게 대형마트를 찾는 고객들이 현저히 감소했습니다. 2008년 전후로 일본 편의점들은 야채 등 식품 원재료를 구성해 주부들을 잡기 시작했습니다.
E경영자: 최근 신세계가 SSM사업이 벽에 부딪히자 ‘위드 미’란 100여개 점포를 가진 편의점 체인을 인수하고, 이를 1만개로 늘리겠다고 장담했답니다.
D컨설턴트: 외형을 욕심내기 이전에 편의점 채널에 대한 깊이있는 연구가 필요합니다. 예를들어 2000년대 중반까지 일본 ‘로손’은 만년 4위였습니다. 그러나 이 회사는 최근 5년간 라이프스타일에 근거한 파격적인 콜래보레이션과 환경별 최적화로 2위로 올라섰죠. 특히 놀라운 것은 1위인 세븐일레븐에 비해 점포수가 1/3에 불과하지만 순익은 세븐일레븐의 2배를 기록할만큼 놀라운 성과를 내고 있습니다. 새로운 채널을 시작할 때는 그런 자기 혁신이 필요한 것입니다. 또 일본 편의점업계가 생존을 위해 택배 비즈니스를 어떻게 결합하였는가에 대해서도 분석해봐야 합니다. 외형만 노래하던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 사회: 주된 관심사인 패션은 어떻습니까? 패션도 본질에서 자기 혁신이 필요할 것 같습니다만.
A경영자: 글로벌 기업인 우리 회사는 최근 ‘패스트’ ‘SPA’란 자기 본질을 버리기로 했습니다. SPA는 공급자 기준이고, 패스트는 소비자 입장의 단어지만, 이는 한계에 다다랐다는 판단에 따른 것입니다.
B경영자: 사실 패스트 패션이 부각된 것은 20세기 이전까지 패션이 컬렉션에 의존할 수 밖에 없었고, 셀레브러티만이 트렌드를 접할 수 있었고, 21세기에 트렌드가 민주화 되면서 각광받은 흐름이었죠. 이미 인터넷과 SPA에 의해 부자와 평민이 모두 같은 트렌드를 공유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는 패스트의 의미가 사라지는 것이죠.
D컨설턴트: 요즘은 트렌드가 중요하지 않다는 것을 실감합니다. 과거 20년전에는 유럽 트렌드를 소개하면 열광적이었죠. 그 이후 퍼스트뷰코리아가 1개월 안에 정보를 전달하면서 10년간 존재가치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WGSN이 실시간으로 제공하고, 여기에 패스트 패션이 접목되니 몰트렌드 현상이 나타난 거죠. 지금은 동시대의 유행이 아니라 “너에게 필요한 것이 뭐냐?”는 개인별 취향에 맞는 스타일을 제공할 수 있는 모델이 필요해졌습니다.
A경영자: 그래서 우리 회사는 ‘애큐리트(accurate) 패션’을 지향하려고 합니다. 필요한 재고를 필요한 사람에게 공급함으로써 적절하게 판매하기 위함이죠. 안팔려도 좋으니 필요한 소비자에게, 필요한 만큼 만들어서 팔겠다는 겁니다. 최근 ‘버버리’가 패션쇼에서 온라인에서만 주문받아 팔겠다고 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해석됩니다.
B경영자: 그렇죠. 패스트는 “유행이 뜨면 빨리 베껴서 빨리 팔아라”를 얘기하지만, 애큐리트는 “필요한 사람에게, 필요한 양을 만들어 정확하게 팔아 재고를 최대한 줄여라”고 말합니다.
투자자 입장에서 향후 패션사업은 재고관리가 핵심으로 평가될 것입니다.
C임원: 요즘 의학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사상의학이라고도 불리는데, 이미 만들어진 인터패롤을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개별 환자들의 상태에 맞게 처방(당신에게 필요한 것)한다는 것입니다. 같은 감기 환자라도 “당신에게 필요한 것은 애스피린 30그램입니다”와 같은 처방이 필요하다는거죠. 결국 패션이나 의학 모두 ‘매스 커스터마이즈’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 사회: 매스 밸류의 극단을 달리던 SPA가 ‘애큐리트’를 지향할 수 있을까요? 구호만 거창하지 않나요.
D컨설턴트: 매스(Mass)를 지향하는 패스트 패션이 애큐리트를 표방하는 것은 결국 ‘감정동화’를 유도함으로써 드림 소사이어티로 가겠다는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제품은 이미 비슷하게 만들었는데, 소비자들에게 “우리가 왜 이걸 사야되느냐”의 명분을 줘야한다는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는 점포 인테리어와 마케팅을 통해 ‘마치 소비자들이 원했던 것이 이것이라는 식’의 감정동화가 필요합니다.
B경영자: 이런 배경에서 ‘프라다’의 행보가 주목됩니다. 요즘 LVMH, PPL 모두가 어렵지만, 유일하게 ‘프라다’만이 웃고 있다. ‘프라다’가 2013년부터 2년간 20분짜리 패션쇼에 25억원을 투자해 무대를 설치함으로써 ‘프라다’에 대한 감정동화를 일으킬 수 있었다고 평가받고 있습니다. 디자인도 많이 바꿨지만 대중에게 표현하는 방식도 바꿨으며, ‘프라다’는 그것을 잘 활용한 것이죠.
<다음호에 계속>
2014년 8월 18일 패션인사이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