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패션산업 잃어버린 20년의 교훈
ECOLOGICAL POWER
한국의 패션시장이 90년대에 들어서 여성복을 중심으로 비약적 성장의 막대한 혜택(?)을 누리고 있는 동안 엔고현상으로 인한 거품이 꺼지면서 지속적인 추락의 국면 속에서 어패럴 산업의 존폐를 걱정하기 시작한 나라가 이웃 일본이다.
일본은 국민소득이 2만달러를 돌파하던 1985년 당시 서방 선진국 재무장관들의 강제에 의한 프라자 합의가 야기한 거품 경제가 십 년도 못 가서 붕괴하기 시작함과 더불어 국민 생활에도 언밸런스 스테이지(unbal anced stage)가 지속되어 의·식·주로 표현되는 삶의 형태성에 심각한 변화가 진행된다. 1차로 패션산업의 기본 구성인 의생활의 비중이 감성적 소비 증가로 한없이 치솟던 1980년대에 비해 급격하게 떨어지기 시작했다.
의생활의 비중이 떨어진 틈새를 주(住) 생활과 식(食) 생활, 그리고 제4의 라이프스타일 소비라는 여가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아지는 서구식 패턴으로 이전 하는 사회적 현상에 따라 일본 패션업계는 20년이라는 오랜 기간에 걸쳐 절반으로 줄어든 급격한 시장 축소에 직면하게 된다.
◇ 닮아가는 시장축소의 형태
일본의 패션 관련 업계 대부분은 지난 20여년간 여러 각도에서 생존을 유지하기 위한 방안 모색에 노력을 기울여 왔다. 일본 패션 산업에 벌어지고 있는 심각한 상황이 우리에게도 동일시하게 나타나리라고는 절대로 생각하지 않는다. 그러나 마치 데자뷰처럼 우리 앞의 문제가 과거 어느 시점에 일본에서 벌어졌었다는 사실을 확인할 때마다 섬뜩하기까지 하다.
예를 든다면 백화점의 절대적 지위상실이라든지 아웃렛의 창궐, 대형 복합 쇼핑몰 러시와 로컬 콘텐츠의 부족 등 과거 20년간 일본 패션업계 주변에서 벌어졌던 상당수의 사건들이 우리 패션산업에도 현재 진행형으로 다가오고 있는 문제라는 점에 이의를 제기할 패션계 인사는 없을 것이라고 본다. 단지 시점의 불확실성에 기인한 ‘나는 괜찮겠지!’라는 안일한 판단을 하는 인사는 일부 남아 있겠지만…
◇ 일본과 닮은꼴인 패션산업
일본의 패션산업 인프라는 놀랍게도 우리나라의 패턴과 닮아있다. 물론 경제개발계획 이전부터 강제 침탈시기에 일본 군국주의가 필요에 의해 일부 이식 해놓은 방적산업 구조가 근간이 되어 패션산업 인프라가 구축되기 시작했기 때문에 형태적 측면에서 섬유 제조 산업에서 출발한다는 유사성에다가 우리나라 경제개발계획의 롤모델이 상당부분 일본에 의존했다.
이 때문에 2차 세계대전 패전 후 일본 경제 복구의 견인차 역할을 한 섬유 산업, 경제도약의 중심 섬유산업, ‘메이드 인 재팬’의 신화 일본 합섬 산업, 관치 산업 행정의 성공적선도 모델, 특화된 산업단지 조성이나 종합 상사를 통한 세계시장 진출 기여 등은 놀랍도록 우리 산업의 궤적과 일치한다.
그러나 긍정적 부분만 닮은 것이 아니라 성장의 그늘 속에 숨어있던 부정적 측면도 따라가기 시작하는데 일본 패션산업이 1980년대 글로벌 아웃소싱 구도로의 의존 심화가 야기시킨 산업 밸류체인 구조의 결손은 바로 어패럴 제조업이라는 내수산업 구조의 취약성 노출과 함께 경제성장으로 획득한 시장을 해외 패션산업에 맡기게 된다는 시나리오도 유사하게 흘러가고 있다.
일본에 어패럴 산업의 태동한 1960년대부터 1980년대 일본 디자이너들이 개척해낸 글로벌 패션 무대에서의 자포니카 시대 개척까지가 일본의 패션산업의 영광이라고 볼 수 있다. 여기까지였다. 일본의 어패럴 비즈니스는 브랜드 홀더, 제조, 유통 판매라는 특유의 3각 비즈니스 모델로 안정적으로 성장해 왔다. 하지만 세계시장에 노출되면서 전통적인 방식의 비즈니스 모델은 효과적 측면에서 빠르게 진화하는 시장의 움직임을 따라하지 못하게 된다.
90년대를 기점으로 제조업 중심의 일본 어패럴 산업은 유통이 주도하는 시장의 변화라는 격랑에 휩싸이게 된다. 거품이 붕괴하기 시작한 일본의 산업구조는 제조중심 구도에서 서비스산업으로의 빠른 이전을 하게 되는데 이러한 형태는 어패럴 제조 시대를 마감하고 패션 서비스 시대로 일본 시장을 이끌게 된다.
◇ 어패럴 제조시대에서 패션 서비스 시대로
일본의 유통채널은 일찍부터 다양화를 추구하면서 진화해 왔다. Department Store /GMS /Shopping Center /Voluntary Chain /Outlet Mall /Catalog Sales/ EC … 에 이르기까지 60년대 초반부터 미국의 리테일 산업을 심화 학습하면서 진화해왔지만 유독 일본의 어패럴 산업은 다양한 리테일 채널을 활용하기 보다는 전통적 방식의 도소매업 구조를 근간으로 성장해왔다.
여기에는 의식주의 변화에 소극적인 전통적인 국민성도 한몫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그러나 80년대 다중 미디어에 노출되기 시작한 일본의 ‘바나나세대’들과’ 제2차 스키마세대’들은 전통적 방식의 패션 공급체계를 부정하기 시작한다.
설상가상으로 80년대 후반부터 진행된 일본 패션유통시장의 급격한 변화는 지역에서 소매 대리점의 몰락과 백화점 영향력의 감소를 가져왔고 도시계획법 등 관련법규가 개정되면서 특별용도지구가 폐지되고 20여년 규제되었던 유통산업의 대 경쟁시대 돌입의 명분을 가져온다. 이러한 패러다임의 변화는 대도시 중심의 유통구조가 지역 분화로 인한 신도시와 교외형 유통의 다양한 형태로 분화하는 현재의 구도가 형성되기 시작한다.
문제는 이러한 플랫폼의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적 어패럴 기업들의 대응이 시장축소로 지속적으로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1990년대 말부터 치밀하게 진행된 ‘갭’ ‘자라’ ‘H&M’ 등 해외 SPA의 침투와 더불어 전통적 일본의 생활양식인 획일적 라이프 스타일의 몰락과 함께 분주한 생활구조와 개인 삶의 질을 추구하고, 소비자 라이프스타일의 급격한 분화로 새로운 생활양식을 요구하는 시장의 대두는 기존 비즈니스 모델의 몰락으로 이어졌다.
◇ 변화에 적응하지 못한 전통적 기업의 향방은?
일본의 어패럴 유통 시장 규모는 1997년 이후 매년 3% 이상 축소 진행되어 2014년 기준 10조엔 규모의 시장으로 파악되는데, 32조 시장으로 추정하는 한국의 시장 규모와 비교해도 인구와 소득 대비 상대적 평가로 보면 한국의 어패럴 산업 보다 큰 시장이라고 하기 어려운 지경에까지 이르게 된다.
1994년 현재 일본 월드사의 대표이사인 데라이 히데조 ‘오조크’ 사업부장이 SPA 시대로의 선업과 함께 촉발 되기 시작한 일본 어패럴 업계는 비로소 어패럴 제조업의 옷을 벗고 패션 서비스의 시대로 진입하기 시작했다고 볼 수 있다. 이후 20년간 일본의 패션산업은 생존과 진화의 과정에서 치열하게 20년을 보내게 된다.
‘기획과 생산을 결합하여 시장을 창출하는 팩토리 브랜드 형식의 SPA’ 라는 비즈니스 모델은 사실은 한국의 패션업계는 일찍부터 채용했던 비즈니스 모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일본 업계가 채택한 SPA 비즈니스 모델에 대해 신의 한 수가 아닌가 하고 다양한 검토와 추구를 한다. 하지만 실제 일본에서 SPA는 자사개발과 OEM 의존방식으로는 글로벌 브랜드들의 가격과 스피드를 따라갈 수 없기 때문에 체계적인 생산 관리 시스템(AMS)를 갖춘 파트너를 활용한 ODM 조달 채택으로 글로벌 대경쟁 시대의 패션 전환기를 돌파하는 방식으로 이해되고 있다.
그렇지만 이러한 SPA 비즈니스 모델도 다양하게 분화되면서 일본 패션업계에는 혼란도 야기 되었다. ‘유니클로’와 같은 초대형 브랜드의 탄생도 있었지만 새로운 모델의 성장 이면에는 전통적 방식을 고수한 기업들의 무수한 희생 속에 구축되었다는 점에서 다양성이 강조되는 패션 시장에서 바람직하지는 않다고 판단하는 것이 일본 패션업계 관계자들의 일반적인 견해이다.
지금 현재 한국의 패션업계도 누구나 ‘유니클로’를 꿈꾸고 있다는 사실을 부인하지는 못할 것이다. 분명한 것은 패션 산업의 특성상 ‘유니클로’ 모델은 상생과 공존의 모델이 아니고 획일화와 제로섬의 모델이기 때문에 경쟁구도의 파괴와 더불어 시장축소의 방향성으로 나아갈 것이라는 것이다.
◇ 새로운 강자 - 포인트社의 성공사례
다행스럽게도 잘 편집된 전문 잡지나 온라인 블로그같은 미디어의 영향력이 건재한 일본 패션 시장시장은 트렌드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생활관을 자기 중심적으로 해석하는 소비자가 늘면서 ‘라이프 스타일형 소비’의 현재화로 이어지는 새로운 단계로 계속 진화중이다.
일본 패션업계는 90년대 이후 끊임없이 추락하는 백화점과 온라인의 성장으로 소비자의 관심과 시장 기회를 지속적으로 빼앗기고 있다. 이에 지속적인 비즈니스 모델의 개발과 다양한 채널 플랫폼에 적응하기 위한 생존위기를 극복하려는 다양한 노력을 함으로써 여전히 전세계 패션 국가에서 컨버전스 측면에서 가장 앞선 시장이라는 평가와 더불어 다양성이라는 패션의 속성을 잘 유지하는 유리한 시장이라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사례로 가장 잘 이해 할 수 있는 기업이 포인트사라고 할 수 있다.
포인트사는 1953년 전후 부흥경제가 한창이던 시절 지금 오너의 부친인 후꾸다 데쯔오 씨가 일본 중부 이바라기 현의 현도인 미토시에서 후꾸다야 양복점을 세우면서 역사가 시작된다. 대표적인 일본 어패럴 기업의 표준이라고 할 수 있는 출발이었다. 이후 1946년 생인 아들 후꾸다 미치오가 1993년 입사를 하고 사명을 포인트라 개명하고, 1995년 도쿄로 본사를 이전하면서 본격적인 패션업에 뛰어들게 된다.
남성복에서 출발하였지만 2세가 경영참여를 하면서 캐주얼로 진화시킨 점에서 ‘유니클로’와 흡사한 과정을 걸었음을 알게 해주는데 이러한 과정은 일본 경제와 일본시장 소비자의 성장에 기인한 적응이라는 점을 우리도 쉽게 이해 할 수 있을 것이다. 현재 포인트 사의 실적은 2014년 기준 점포수 1326개에 한화로 1조 5천억 정도로 일본 어패럴 업계에서 10위권에 들지만 캐주얼 분야로만 놓고 보면 ‘유니클로’에 이어 2위로 기록되는 실적이다.
이러한 포인트사를 우리가 주목해 온 것은 현재 일본의 대표 아동복 그룹인 나루미야의 대표이사를 맡고 있는 이시이 토모아끼가 대표이사에 취임한 2006년부터라 할 수 있다.
현재 포인트사의 근간이 된 기업 이념부터 비즈니스 모델, 시스템의 완성을 구축하는데 이시이 대표는 지대한 공헌을 세웠는데 포인트사의 슬로건인 ‘우리는 패션을 통해 모든 사람이 즐거움을 느끼도록 하는데 기여합니다’ 도 이때 만들어 졌으며, 이러한 기업 정신은 실제 기업 경영에 그대로 반영해서 일본 기업 평균보다 30%를 상회하는 직원의 연간 휴가일수 라든지 백화점과 할인점이 진화하는 유통 세그먼트의 틈새시장에 ‘패션 캐주얼’ 시장을 창조해 베이직한 라인을 기본으로 트렌드 아이템을 적절히 포함하면서 가격경쟁력을 위해 ‘lower mediate’를 고수하는 전략으로 발전한다. 포인트가 제안한 ‘패션 캐주얼’은 고객이 어디서나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옷으로 규정함으로써 ‘유니클로’가 지향하는 이상적인 가격대에다가 소비자가 원하는 동시대성의 감성이 더해짐으로써 보다 더 강한 소비자의 지지를 유도하게 된다.
현재 포인트는 다양한 채널과 광범위한 연령층에 적용 가능한 14개의 브랜드를 운영 중이다.
이러한 다브랜드 전략이 효과적으로 성공할 수 있던 배경에는 항상 히트 상품이 매장에 줄지어있는 신선도 높은 매장을 지향한다는 포인트의 매장 운용 전략과 1.5~2 개월의 전 상품을 투입하는 사이클을 기본으로 일본 업계에 유례가 없던 상품 운용시스템과 이를 뒷받침 하기 위한 일본 내 3곳의 물류 센터를 가동해 ‘당일 직배송’ 원칙을 실현할 수 있는 물류 인프라 등의 하드웨어 시스템이 힘을 보탰기 때문이다.
또한 매장별 SKU기준 규모의 확대에 따라 현장에서 의사 결정이 지연되어 기회를 잃는 일이 없도록 레벨별 의사 결정을 매뉴얼화 하여 추진하고 이 기준에 따른 신속한 판단과 행동을 유지하는 현장 전술이 가동되면서 오늘의 포인트로 성장 할 수 있었다.
이러한 기본적인 전략과 전술이 충분히 구축되었기 때문에 축소하는 일본 시장에서 포인트는 계속적인 성장의 모습, 아니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포인트를 신뢰하는 시장의 기대감이 항상 존재하는 단계로 까지 진화 할 수 있었던 것으로 판단한다.
2013년에 포인트는 지주회사로의 전환을 꾀하고 아다스트리아 홀딩스라는 지주회사를 만들어 회사의 3번째 발전을 시도하고 있다. 아다스트리아(Adastria)는 라틴어 격언인 “Per aspera ad astra”에서 인용하여 만들어진 단어로 ‘곤란을 극복하고 영광을 맞으라’란 뜻을 지니고 있다. 2013년 새로 만든 아다스트리아 지주회사는 의류 중심의 포인트 외에 라이프 스타일 중심의 트리티니 아트라는 회사와 글로벌 시장 진출을 목적으로 하는 중국, 싱가폴 그리고 한국까지 십 여개의 자회사로 구성되어 있다.
아직 한국에서의 활동은 ‘니코앤드’ 외에는 잘 노출 되고 있지는 않지만 역시 파괴력 있게 국내 시장을 잠식해 올 것으로 예상 된다. 특히 취약한 여성캐주얼 시장과 라이프 스타일 시장에서의 공략은 광범위 하게 진행 될 것으로 본다.
최근 일본에서 포인트사는 또 한번의 진화를 한다. ‘Lower Mediate’라는 시장 포지션의 한계를 딛고 '제네시스' 브랜드의 서브로 ‘스크랩북’이라는 셀렉트숍을 도쿄 캣 스트리트에 일본 편집숍 브랜드의 대표주자 중 하나인 프레이크 스토어를 빼내고 진출하였다.
이렇게 끊임 없이 도전하고 진화하는 포인트의 정신은 위기 앞에 위축되어 아무 일도 하지 못하고 있는 국내의 많은 패션기업인들에게 시사하는 점이 많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은 단순한 시장 축소로만 이어진 것이 아니라 포인트와 같은 진정한 강자를 새롭게 등장 시켰다.
우리 시장에도 더 이상 행운에 기대지 말고 진정한 실력으로 거듭날 수 있는 강자가 등장하기를 기대하면서 쉽게 운에 의지하고 나아가던 경영의 시대는 이제 마무리하고 진정한 실력자들이 겨루는 발전된 시장이 되기를 꿈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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