ZARA, H&M, 유니클로 등의 제조·유통 일괄형 SPA 브랜드는 패스트 패션의 상징이다. 유통 단계가 짧아 트렌드의 반영이 빠르고 합리적인 가격에 상품 회전도 빠르다. 업계의 전반적인 불황에도 SPA 브랜드는 높은 시장 점유율을 나타내며 패션의 흐름을 바꿔놓고 있다. 2천 년대 초반 이러한 세계적 흐름을 주시하며 일찌감치 SPA 브랜드 시장을 준비한 이가 있었다. 바로 (주)패션랜드의 최익 대표다. 2004년 여성 캐주얼 ‘무자크’ 인수를 시작으로 2012년 ‘클리지’, 2014년 한국형 SPA 브랜드 ‘아클림콜렉트’, 영 스트리트 브랜드 ‘무자크 design by(무자크 블루)’, 편집형 잡화 브랜드 ‘발리발리스’ 등을 연이어 론칭한 그는 남·여·키즈는 물론 잡화까지 아우르는 토탈 패션 기업으로의 자리매김하고 있다.
배우 황정음을 통해 스타마케팅을 활발히 전개하고 있는 ‘무자크’는 (주)패션랜드의 대표적인 로드숍 브랜드이다. 특히 올해 ㈜패션랜드는 운영중인 전체 브랜드의 총 350개의 매장 확보와 연간 매출 1200억 원을 목표로 대대적인 업그레이드를 추진 중이다. 무자크 외 최근 론칭한 신규 브랜드들 모두 2030 세대의 니즈를 반영한 스트리트 패션과 SPA 브랜드, 중저가 편집숍 브랜드 등이다.
대중의 라이프 스타일을 빠르게 읽어내는 최익 대표의 감각은 놀랍다. 백화점 판매가 호황이던 시절 그는 이미 SPA 브랜드 시장에 대비했다. SPA 브랜드가 약진하는 외국 시장을 주시하던 중 ‘저들이 한국시장을 그냥 두지는 않겠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패션업계 전체가 불황의 늪에서 힘겨워할 때 (주)패션랜드는 꿋꿋이 살아남아 신규 브랜드 론칭까지 할 수 있었던 것은 그의 빠른 시장 예측력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한국형 SPA 브랜드의 약진
지난해는 경기 불황으로 모든 업종이 어려움을 겪은 해였지만 특히 패션 분야는 업계 전체가 지독한 불황의 터널을 지나야 했다. 세월호 사고의 여파가 채 사그라지기도 전에 메르스 사태가 터졌고 매출을 만회해야 할 겨울 시즌에는 이상 고온의 엘니뇨가 발목을 잡았다. “모든 패션 업체가 다 폭탄을 맞았다”며 그는 고개를 저었다.
그나마 (주)패션랜드가 큰 타격을 입지 않은 이유는 무자크의 첫 시작이 그랬듯 트렌드에 민감하게 대응하고 빠르게 결정하는 최 대표 특유의 경영 방식에서 찾을 수 있다. 국외 생산, 즉 글로벌 소싱을 통해 합리적인 가격대의 양질의 아이템을 공급하는 것 역시 (주)패션랜드의 경쟁력이다. 국내나 국외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트렌드와 가격, 품질 모두 빠르게 대응할 수 있도록 국내외 생산 시스템을 모두 갖춘 업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
“세계적인 글로벌 브랜드는 모두 글로벌 소싱을 하거든요. 우리 회사는 글로벌 브랜드로서 규모가 크지 않은데도 글로벌 소싱이 잘 되어 있는 편입니다. 국내 생산 시스템 역시 갖춰져 있어서 제품 특성에 따라 국내외 생산이 적절히 균형을 이루고 있다는 것이 (주)패션랜드의 장점입니다.”
그는 ㈜패션랜드가 업계 트렌드 리더로 거듭나기 위해 현재 시스템을 제정비하고 구축 중에 있지만 곧 빠르게 팔로우 할 수 있을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의류 대리점주에서 패션 업체 CEO로
그는 1990년대부터 베이직하우스 등 10여 개 브랜드의 의류 대리점을 운영하던 대리점주 출신이다. 지금이야 150여 명의 직원을 둔 패션 업체 CEO지만 그는 원래 패션에는 아예 문외한이었던 행정학 전공자였다. 대학 졸업 후 고시에 전념하던 중 뒤늦게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한 후 우연히 접한 분야가 의류 대리점 운영이었다. 여성복 사이즈 종류도 모르던 그가 고객이나 본사와 적극적으로 소통하면서 패션산업의 노하우를 쌓아나간 시기도 바로 그때였다.
아무것도 몰랐기에 더 열심히 뛰었다. 엉덩이에 종기 날 정도로 고시공부에 목숨 건 사람들을 보면서 지낸 것이 큰 도움이 됐다. 다른 사람들은 왜 이렇게 일을 열심히 안 하는지 그게 의아할 정도였다. 덕분에 3년간의 대리점 운영은 큰 성공을 거뒀다.
“자기 본업을 부업처럼 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저는 목숨 걸고 몰두하면 분명히 성공한다는 걸 계속 보면서 지내왔으니까 하루 15시간씩 뛰어 다녔습니다. 공부할 때 그 시절처럼만 열심히 했으면 어쩌면 합격했을지도 모르겠네요.”
대리점 성공으로 자신감을 가진 그는 직접 중국 생산을 시도했고, 이마저 소위 '대박'을 터트렸다. 중국에서 제품이 들어오는 날에는 도매상들이 줄을 서서 순식간에 쓸어갈 정도였다. 하지만 모든 것을 건 중국 생산이 사기로 한순간에 무너졌고, 그는 전 재산을 잃었다.
월세를 전전하며 재기하기까지 꼬박 4년이 걸렸다. 그렇게 힘겹게 일어서서 우여곡절 끝에 무자크 브랜드를 인수한 것은 그의 삶에서 큰 전환점이 됐다. 무작정 버티고 매달린 끝에 드디어 3년 만에 적자에서 벗어나던 날, 그는 새로 태어난 것이나 다름없었다.
글로벌 패션 브랜드를 향한 목표
패션에 관한 경험 하나 없이 시작해 지금까지 성장한 것은 전적으로 직관의 힘이었다. 시장을 바라보고 예측하는 그의 직관력은 리스크를 최소화하고 변화에 대응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됐고, 이는 훗날 탄탄한 경쟁력이 됐다. 그는 앞으로 약 2년간은 이제 론칭 2년 차에 접어든 신규 브랜드들의 안착에 주력할 방침이다.
그가 (주)패션랜드의 브랜드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것은 그저 패션만이 아니라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충족시키고 변화와 트렌드를 리드하는 ‘라이프 스토어’ 개념이다. 글로벌 브랜드가 공략하지 못한 틈새시장을 정복하는 것이 그의 목표다. 이를 위해 상품 전략을 세분화하여 각 매장의 역량을 키우고 안테나 역할의 중형급 이상 직영 매장을 열어 2030 고객층과의 접점을 끊임없이 확대해 나갈 생각이다.
패션업에 종사하는 20년 동안 늘 그의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 의문이 하나 있었다. 왜 한국에는 글로벌 브랜드가 없을까? 하는 점이다. 여러 요인이 있겠지만, 국내는 외국과 달리 개발, 생산, 판매, 관리 등 분야별 전문화가 이뤄지지 못해서 중소 패션 업체가 성장하기 어려운 여건이라는 것. 이러한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그는 회사를 더욱 키워 궁극적으로 글로벌 브랜드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얼마나 오래 걸릴지는 모르겠어요. 신규 브랜드 중 글로벌 브랜드를 타겟으로 한 것이 있습니다. 내수에서 탄탄하게 자리 잡으면 반드시 외국으로 나갈 것입니다. 누군가 글로벌 브랜드를 만든다면 저도 그중 한 사람이 되고 싶고, 아무도 못 한다면 제가 하고 싶습니다.”
“나 자신과 타협하지 말고 정정당당하게”
올해의 가장 큰 계획은 신규 브랜드의 안착과 글로벌 브랜드로의 성장을 위한 준비다. 현재 클리지 브랜드가 ‘더클리지’라는 이름으로 중국에서 매장을 운영 중이며 올해 안에 스무 개까지 매장을 확장할 계획이다. 내부적으로는 외형상의 성장보다는 인재경영과 구성원 간의 소통에 주력할 방침이다. 또한, 지난 2012년부터 현재까지 환경재단이 주최하는 ‘서울환경영화제’에 일정금액 기부 및 기타 후원을 통해 친환경 녹색 성장을 위한 환경캠페인도 진행하고 있으며, 작년 연말에는 고객과 함께하는 ‘사랑의 의류 나눔 캠페인’을 통해 소외된 이웃과 함께하는 나눔 문화의 실천 역시 지속할 예정이다.
한번 무너지면 재기하기 쉽지 않은 전쟁터에서 그가 바닥까지 떨어진 후에도 주변과의 관계를 유지하며 살아남아 성공할 수 있었던 진짜 요인은 과연 무엇일까? 그와의 인터뷰 중 그가 계속해서 강조한 ‘정정당당’이라는 말에서 그 힌트를 찾을 수 있었다.
그의 좌우명은 ‘정정당당하게 살자’다. 이 말에는 자기를 합리화하지 말자, 자신과 타협하지 말자, 핑계 대지 말고 양심에 거리낌 없는 삶을 살자 등 그가 지금까지도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개인적인 다짐이 모두 포함된다. 극한의 위기에서도 ‘정정당당하게 살자’는 신념 하나가 그를 지탱해주는 가장 큰 힘이었다. ‘대기업 한번 해보고 싶다’는 꿈이 너무나도 크지만 이를 위해 변칙을 쓰지는 않을 생각이다.
“정정당당하게 대기업을 만드는 게 목표지 대기업 만들겠다고 나 자신과 타협하면 나중에 돌이켜볼 때 행복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삶이 꼭 게임 같아요. 룰을 제대로 지키면서 과연 내가 어디까지 점수를 낼 수 있을까, 어디까지 기업을 일굴 수 있을까 하는 게임이요.”
치열한 생존 경쟁과 함께 삶은 갈수록 팍팍해진다. 패션시장도 예외가 아니다. 그는 이 팍팍한 삶에서 정정당당한 게임을 통해 감성과 문화가 공존하고 라이프 스타일을 아우르는 혁신적인 공간을 만들어갈 꿈을 꾼다. 그렇게 그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갈 앞으로의 10년을 준비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