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 디자이너 이림, 뮤즈여신의 옷을 짓는 장인

한국패션협회 2017-10-31 00:00 조회수 아이콘 20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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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패션 디자이너 이림

뮤즈 여신의 옷을 짓는 장인  


 

지난 4월 리카르도 뮤티가 한국을 방문하여 경기필 오케스트라와 2번의 공연을 가졌다. 이 공연은 두 가지 점에서 세 간의 이목을 끌었다. 첫 번째는 리카르도 무티의 비싼 게런티 였고, 다른 하나는 소프라노 여지원이 리카르도 무티와 공연을 한다는 것이었다. 여지원 이라는 소프라노는 잘츠부르그 페스티벌에서 무티에 의해 발탁되어 공연을 하면서 명성을 얻게 된 한국의 입지전적인 성악가 이다. 그녀의 무티와의 한국 공연이 이루어진 것은 당연한 일이었고, 공연 을 본 관객들은 여지원이라는 새로운 한국의 소프라노에 흠뻑 빠져들어 갔다. 그런데 어떤 음악인이 소프라노 여지원 이 입은 드레스가 공연만큼 인상적이었다고 본 기자에게 취재를 권했다. 건성으로 받아 넘기다 지난 주 직접 전화번호 까지 건네는 음악가의 성화에 못 이겨, 디자이너 이림을 취재하게 되었고, 인터뷰를 통해 리카르도 무티 한국 공연의 세 번째 우리가 주목해야 할 점을 발견하게 된다. 그 세 번째는 소프라노 여지원이 입은 드레스와 그 드레스를 만든 이 림 디자이너 이었다.

 


 

소프라노 여지원의 드레스를 만들다. 

여지원씨의 어머님과는 아마추어로서 같이 성악을 배우 며 안면이 있는 사이였습니다. 어머니는 평소 알고 지내 던 제가 자신의 딸의 드레스를 만들어 주기를 원했고, 저는 소프라노 여지원과 뮤티의 공연의 중요성에 대해 이야기를 듣고, 흔쾌히 만들어 주기로 했습니다. 소프라노 여지원이 돋보이는 것도 중요하지만, 음악과 무대에 맞게 옷을 디자인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했 습니다. 베르디 음악의 열정을 생각하고, 장미꽃을 주제 로 정해 디자인하였습니다. 장미꽃에 맞는 천을 찾고, 소매는 블랙으로 절제미를 강조하였습니다. 베르디 곡의 우울함과 카리스마를 옷에 표현하고 싶었습니다. 옷에 대한 구상은 마쳤으나 여지원씨가 한국에 없는 관계로, 어머니를 통한 기초 지식과 상상만으로 옷을 완성하였습 니다. 공연 이틀 전, 여지원씨가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저의 의상실로 왔고 제가 만든 옷을 보고 기뻐했습니다. 그러나 상상만으로 만든 옷은 약간 작았습니다. 

성악가는 노래를 부르기 위해 약간 풍부한 드레스를 입어야 했 습니다. 그리고 지휘자 무티는 성악가의 드레스에 대해 서도 엄격하였기에 무티가 내가 만든 옷을 보고 아니라 고 하면 그 옷은 무티의 공연에서는 입을 수 없는 무용 지물 인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손해, 거절되면 제 자존 심에 먹칠하는 안타까운 상황 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전 직원을 동원해 이틀 만에 여지원씨가 노래를 잘 부를 수 있도록 그녀의 몸에 맞추어 다시 만들었고, 여지원씨 는 그 옷을 입고 무티 앞에 섰습니다. 무티는 내가 만든 여지원씨의 드레스를 ‘한 편의 시’ 같다고 칭찬해주었으 며, 제가 만든 드레스는 그렇게 무대에 올라, 소프라노 여지원의 노래와 어울려 음악회를 풍성하게 만들어주었 습니다. 다행이 여지원씨가 못 입은 작은 드레스는 어떤 피아니 스트 분이 사갔습니다. 여지원씨는 8월 오스트리아 잘츠 부르크에서 열리는 베르디 축제에서 이 옷을 다시 입고 공연하겠다고 합니다. 감사한 일입니다.”

 



 
선생님에 대해서 말씀해주세요.


KBS가 남산에 있을 때, 방송국 세트 미술실에서 2년 간 근무하였습니다. 밤에 퇴근하며 명동에 명품의상실 쇼 윈도우에 있는 옷들을 볼 때, 아름답다고 생각했습니 다. 그 옷을 보면서 ‘나도 옷을 만들어볼까?’ 라고 생각하 였습니다. 1967년, KBS를 그만 두고, 2년 동안 국제 복장학원에서 패션을 공부하게 되었고, 샵을 차리게 되 었습니다. 당시, 반도호텔의 미용사에게 드레스를 해 준 적이 있는데, 미용실에 온 손님들이 드레스가 어디 것이 냐고 물어보았습니다. 그 덕에 많은 좋은 손님들을 알게 되었습니다. 패션은 입는 사람, 시대, 옷감에 따라 달라 지니 너무 재미있습니다. 물론, 돈을 많이 주고 비싼 옷 들을 사는 분도 좋은 손님이지만, 디자이너의 감성을 이 해하고 감성을 부추겨주는 손님이 더 좋은 손님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당시 저는 좋은 손님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손님들은 저의 감성을 이해해주고, 디자인에 관해서도 이야기 해 주었습니다. 그 손님들 덕분에 제가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패션 디자이너로서 후배들에게 어떤 점을 우리나라는 옷이 무조건 멋있어야 한다며, 결과를 중요 하게 생각합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교육이 잘못되어 있다 고 생각합니다. 드레스를 아무리 근사하게 만들었어도 자신과 어울리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데 사람들 은 옷을 선택하면서 ‘인기가 있냐? 유명한 사람들이 많이 입었냐?’ 부터 이야기합니다. 하지만 프랑스에서는 결과 보다 옷을 만드는 과정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옷의 외적인 면만 보는 것이 아니라 옷 속에 들어가 있는 디자 이너의 감성, 생각, 영감을 더 중요하게 봅니다. 리세드 라 모드의 학장과 부학장이 저희 샵에 방문한 적 이 있습니다. 장인 정신을 고집하여 샵을 운영하는 저에 게 프랑스 학교에서 강의를 해 달라고 했습니다. 특별한 것이 없기에 강의하는 것이 망설어지더라고요. 그런 저 에게 학장님은 그 동안 옷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말하 면 된다고 이야기 해주셨습니다. 그들이 저의 기본을 중 시하는 자세를 높이 보아준 것 같습니다.

연주자들의 드레스를 만들 때, 특별히 어떠한 점을  연주자들은 연주복을 의뢰할 때, 프로그램을 디자이너에 게 이야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예를 들어, 슈베르트 곡 을 한다면, 곡이 언제 나왔는지, 어떠한 뜻을 가지고 있 는 지를 말하고, 음악의 특성을 이야기해준다면, 디자이 너는 그 설명을 듣고 거기에 맞는 재질, 촉감, 시각에 맞 는 옷을 디자인 할 것입니다. 저 같은 경우는 음악을 여 러 번 들으면서 어떠한 옷을 만들지 고민합니다. 생각을 깊게 하다 보면 영감이 떠오릅니다. 유니버셜 발레단의 문훈숙 단장의 옷을 만든 적이 있습니 다. 저는 문훅숙씨를 굉장히 우아한 여자라고 생각했고, 카리스마를 더해 보이기 위해 블랙과 화이트로 드레스를 제작하였습니다. 유니버셜 발레단의 외국 안무가님이 저 의 옷이 음악과 어울린다고 하며 극찬해주었습니다.  앞서 말했듯이, 디자이너는 연주자들이 연주할 음악에 맞춰서 옷을 만들어야 합니다. 연주가나 안무가가 무대 에서 공연을 잘하는 것이 중요하지만, 옷도 무대에 포함 이 되어 있다고 생각합니다. 드레스를 만들 때, 옷을 예 쁘게 만드는 것보다 상황에 몰입해서 만드는 것이 중요 하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저는 연주자의 분위기, 음 악의 성향을 먼저 생각하고 옷을 디자인 합니다. 하지만 고민한다고 해서 다 좋은 것은 아닙니다. 고민은 머릿속 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해야 합니다. 그리고 고민한 것을 실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다시 한 번 말하지만, 디자이너는 옷의 특징을 살려 사 람들에게 맞추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디자 이너는 자신의 옷이 돋보이게 하기보다 입은 사람을 돋 보이게 만들어야 합니다.




패션 디자이너 이림

국제복장학원에서 공부한 패션 디자이너 이림은 1973년 이림 스타일 부티크를 오픈하였다. 1982년 독립기념관 건 립을 위한 하얏트 패션쇼를 개최한 그는 F.I.T(Fashion Institute of Technology)과정을 이수하였다. 1995년 유럽대사 친선과 장애자 자선을 위한 패션쇼를, 1997년에는 청담문화행사 자선 패션쇼를 열었다. 프랑스 숄레(Cholet) 지역의 라세드 라 모드(Lyc´ee de la mode)에서 강연한 바가 있는 그는 현재 이림 스타일 대 표로 활동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