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욱준 - 박춘무, 세계 패션시장 도전한 국내 대표 디자이너 ②

한국패션협회 2010-12-29 09:39 조회수 아이콘 12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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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패션시장 도전한 국내 대표 디자이너 ②


지식경제부 지원, 한국패션협회 주관 / 유망 디자이너 발굴 및 육성사업 - ‘해외 컬렉션 지원’

지식경제부는 한국 패션산업의 세계화를 위해 해외 유명 컬렉션 참가 지원을 통한 세계적인 디자이너 육성 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식경제부 후원, 한국패션협회 주관으로 시행 중인 ‘해외 컬렉션 지원 사업’을 통해 글로벌 시장 진출에 성공한 국내 간판급 디자이너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이들은 하나같이 수주 비즈니스 활성화를 통해 한국의 패션 이미지를 드높이는 한편, 패션 고부가가치 수출 증대에 혁혁한 공적을 쌓아가고 있다. 영광 뒤에 가려진 그들의 피땀어린 노력과 온몸으로 부딪히며 일궈낸 성공 스토리를 집중 조명해 본다.



“클래식을 새롭게 변화시킨「JUUN.J」”

정욱준 「JUUN.J」 디자이너

에디슬리먼의 옷을 입기 위해 체중 40kg을 감량한 「샤넬」의 칼 라거펠트가 선택한 「준지(JUUN.J)」 그가 2008년 이탈리아 밀라노 쇼에 정욱준의 「준지」를 입고 피날레에 등장한 모습에 우리는 놀랐고 현지 관심은 폭발했다.

정욱준의 파리 컬렉션을 보고 라거펠트가 밀라노 셀렉트 숍 ‘단토네’에서 본인은 물론 어시스트용까지 사갔다고 하니 「준지」에 대한 관심은 알만하다. 다음 시즌에는 「샤넬」 디자인 팀에서 의뢰가 들어와 특별 제작한 상품을 선물하기도 했다.

2007년 파리 컬렉션 진출 이래 현재 그는 ‘르 피가로’ 등 유력 매체에서 ‘클래식을 새롭게 변화시킨 디자인’이라는 찬사를 받고 있다.「쉬퐁」 「클럽모나코」와 「닉스」 디자인 실장을 거친 그가 처음 디자이너의 이름을 걸고 시작한 브랜드가 「론 커스텀」이다. 1997년 신사동 가로수 길에 16.5㎡(5평) 남짓 사무실을 얻어 시작했다.

“경기가 좋지 않았던 상황에 어떻게 브랜드를 론칭하게 됐는지 자주 질문 받는데, 사실 전혀 개의치 않았던 부분이다. 10년간 내셔널 브랜드 디자이너로 일하면서 ‘내 옷’에 대한 갈망이 컸다. 당시에는 하고자 하는 의지가 무엇보다 중요했다.”

정 디자이너는 본인의 입지를 탄탄하게 쌓아가던 당시 자신의 브랜드를 론칭 할 수 있었던 계기에 대해 ‘간절히 원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하게 답했다. 2001년 서울 컬렉션 데뷔와 동시에 화제를 일으키며 매니아를 만들어가던 정욱준 디자이너가 꼭 10년만인 2007년 파리 컬렉션에 「준지」를 선보였다. 디자이너라면 누구나 바라는 꿈의 무대이기도 하지만 꾸준히 컬렉션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녹록하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해외 컬렉션 진출 이유라면 두 가지다. 해외 무대로 진출하고자 하는 디자이너로써의 순수한 마음과 디자이너 브랜드가 성장하기 어려운 국내 유통 현실 때문이었다. 홀 세일이 없는 국내 유통체계는 국내 디자이너들에게는 정말 열악하다. 매장 1~2개점을 오픈해도 수수료와 매장 관리비 때문에 경제적인 측면에서는 큰 이익을 남기기 어렵다. 해외에서 인정받고 역으로 국내에 들어와도 된다고 생각했다.”
정 디자이너는 해외 진출에 대해 “국내 비즈니스 현실 역시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말했다.

해외 컬렉션에 선보여진 「준지」는 이러한 디자이너의 마음이 반영돼 있다. 철저하게 계산된 쇼를 선보였다는 것. 심플하고 커머셜하되 정욱준이 추구하는 컬러를 확실히 담고 해외 바이어들의 바잉까지 염두에 뒀다.

그는 해외 진출은 계획하는 디자이너들에게 “철저하게 자신의 아이덴터티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 두 시즌 컬렉션을 진행해 성과를 낼 수 없는 무대에서 반짝 스타는 있을 수 없다는 것이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정부(지식경제부)의 해외 컬렉션 지원사업의 중요성을 강조하며 지속적이며 효과적인 지원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뉴욕 재입성 가능성을 엿보다”

박춘무 「데무」 디자이너

‘뉴욕 재입성’ 올 봄 뉴욕 패션위크 기간에 현지 쇼룸에서 선보인 F/W 컬렉션을 시작으로 최근 2011 S/S 컬렉션을 마무리 했다. 그리고 내년 시즌 준비로 한창 바쁜 박춘무 디자이너는 이제 3 시즌째를 맞이한다. 그녀의 뉴욕 진출은 감회가 남다르다. 5년 동안 운영하던 뉴욕 매장을 9.11 테러로 초토화된 시장분위기에 밀려 접어야만 했다.

“현지 매장은 어느 정도 사업기반이 마련된 디자이너들에게 안테나 샵 역할을 하면서 지속적으로 바이어들의 관심을 끌 수 있다. 수익성이 높지 않더라도 운영이 가능할 정도만 된다면 해외 비즈니스를 위해서는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다. 뉴욕 매장에 대한 애정이 깊었다. 매장 앞 아파트를 임대해 사무 공간을 마련할 정도로 매진했었다. 제법 인지도가 올라가고 셀러브리티들이 발걸음이 잦아질 때쯤 테러 사건으로 매장을 접었다. 얼마나 속이 상했었는지 모른다.”

9.11 테러 이후 박 디자이너의 매장뿐 아니라 인근 소호 거리의 숍들에도 사람을 찾기가 어려웠다. 그녀는 다시 도전한 뉴욕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그녀가 선보인 옷들에 대한 현지 언론의 반응은 ‘새로운 스타일’, ‘신선하다’ 였다.

내년이면 브랜드 론칭 20년차가 되는 디자이너에겐 최대의 찬사일지도 모른다. 두 시즌 만에 10곳의 바이어들과 계약을 맺었다. 뉴욕 패션위크는 4대 패션위크 중 가장 상업적이면서 엔터테인먼트 요소가 강하다. 파리와 밀라노, 런던 패션위크는 디자인의 예술적 가치를 중시한다. 반면 뉴욕 패션위크 디자이너들은 실용성과 상업성에 무게를 둔다. 전 세계 바이어들이 뉴욕으로 몰리는 가장 큰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이곳에 오면 팔 수 있는 물건이 넘쳐나기 때문이다.

“10년 전에 동양 디자이너를 바라보는 시선과 지금은 확연히 달라졌음을 느꼈다. 파리 프레타포르테 전시회에서 부스에 걸린 인공기를 바라보며 화들짝 놀라던 때를 생각하면 참 많이 발전했다. 오히려 아시아계 디자이너들에게 호의적이고 관심을 가지는 분위기다. 파리에 비해 커머셜한 스타일을 선호하고 피드백도 빠르다. 디자인 할 때 라인이나 컷팅 등 의도적으로 새로운 스타일을 찾는 편인데 이러한 면은 신선하게 본 것 같다.”

박 디자이너는 “항상 ’시작이다’라는 마음가짐으로 디자인을 한다며 매너리즘에 빠지지 않기 위해 일부러라도 새로운 것을 추구한다”고 말했다. 사실 20년 정도 한 브랜드에서 비즈니스를 해온 사람이라면 디자인할 때부터 디자인하면서 옷이 얼마나 팔리겠다 정도는 짐작할 수 있다는 것.

한편 정부 지원 사업 덕에 뉴욕 무대에 다시 오르게 된 박디자이너는 요즘 실력있는 후배들이 많은 것 같다며 지속적이고 효율적인 정부 지원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특히 “해외 컬렉션 지원의 경우 막연하게 생각하는 해외 컬렉션을 구체화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될 수 있고 쇼 규모가 비교적 작은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정말 가뭄의 단비일 수 있다”고 말했다. 또한 더 효율적으로 운영되기 위해서는 “현지 홍보 대행사나 에이전시가 필요하다”는 조언을 덧붙였다.



패션인사이트 2010.12.29(수) http://www.f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