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 수 없었던 새로운 무언가(something)를 보여달라.” 안토니오 마라스 「겐조」 수석 디자이너가 신출내기 디자이너 이도이에게 주문한 미션이다. 2003년 세인트 마틴을 졸업하고 「크리스찬 디올」 스튜디오에 근무하던 이 디자이너. 그녀는 자신의 퍼포먼스를 더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 「겐조」의 문을 두드렸고 그녀의 포트폴리오에 빠져버린 안토니오가 요청도 했다.
“나는 안토니오가 「겐조」에 데려온 유일한 1인이었다. 「크리스찬 디올」에 근무하면서 많은 것을 얻었지만 내 특기를 더 보여주면서 기여할 곳을 찾았다. 그리고 안토니오는 내 포트폴리오에서 가능성을 엿봤다. 당시 「겐조」는 사람의 들락거림도 잦은 편이었고 다소 매너리즘에 빠진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그래서 ‘새로운 것’을 내게 주문한 것 같다.”
안토니오와의 만남을 기회로 느꼈던 이 디자이너는 100% 실력 발휘를 한다. 심혈을 기울여 만든 오브제를 보고 감탄한 안토니오는 그에게 2004년 A/W 컬렉션에 내보일 컬렉션용 액세서리를 만들 것을 요청했다. 쇼에 올라간 액세서리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다음 시즌에는 「루이비통」 컬렉션 쇼의 액세서리 디자인은 물론 총괄 진행까지 맞겼다. 그리고 그 다음 시즌에 액세서리 라이선스까지 총괄 담당하게 되면서 그녀는 한 층 더 성장하게 된다.
“처음에는 내가 한 일을 인정받고 더 많은 것들을 보여줄 수 있다는 생각에 즐거웠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나는 옷을 만드는 사람이 아닌가?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이대로 가다간 데뷔 무대에 ‘젊은’이 아닌 ‘늙은’ 디자이너라는 수익어가 붙을 것 같았다. 일을 액세서리 쪽에 치중하게 된 것도 부담스러웠다.”
결국 이 디자이너는 과감하게 파리에서 2006년 「도이 파리스(Doii paris)」 라는 브랜드를 론칭하였다. 그리고 파리 프레타 포르테 전시회, 후즈넥스트 등 4개 이상의 전시회에도 참여했다. 첫 해는 5개 업체의 바이어와 수주 계약을 맺었지만 현재는 25개 업체로 늘어났다.
“전시회 참여는 나와 같은 신진 디자이너들에게는 굉장히 중요하다. 수익과 직결되기 때문이다. 돈을 벌어야 재투자가 가능해 다른 전시회에 참여할 수 있고 모든 스케줄은 아니지만 바이어를 대상으로 미니 쇼 등의 개인 패션쇼 진행도 가능하다.”
자신의 영역을 키워가고 있는 이 디자이너는 향후 「도이 파리스」 를 글로벌 브랜드로 키워내는 것이 목표다. 직접 그린 화려한 프린트, 수 작업한 비딩과 매듭장식이 강점인 「도이 파리스」 의 옷들은 현재 프랑스, 미국, 독일, 영국, 중동 지역에서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최근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정부의 지원사업의 수혜자이기도 한 이 디자이너는 “아직까지 수익 기반이 탄탄하지 않은 신인들에게 지원은 그야말로 가뭄의 단비”라며 “누구보다 환영한다”고 말했다. “단지 기반이 잡히기도 전에 지원이 끊기게 되는 경우가 많다”며 “해외 시장에서 기반을 다질 때까지 지속적인 지원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맥퀀보다는 랄프로렌 같은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최범석 디자이너의 철학이 담긴 한 마디다. 대중에게 보다 쉽게 다가갈 수 있고 입을 수 있는 옷을 만들겠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다. 각국의 프레스보다 바이어들에게 더 인정받고 싶은 이유이기도 하다.
“’디자인이 너무 빨랐나 봐’, ‘옷은 좋았는데’ 등은 대중들에게 인정받지 못한 디자이너의 변명일 뿐, 디자이너에게 필수적인 것은 브랜드의 아이덴티티를 유지하면서 시장과 타협할 수 있는 접점을 찾는 것이다.”
「제너럴아이디어」의 브랜드만큼 최범석이라는 이름은 패션을 넘어 대중 문화 내에서 잘 알려져 있다. 때로는 대중의 시선이 부담스럽기도 할 터인데 성격만큼이나 시원한 대답이 돌아온다.
최 디자이너는 “부담은 크게 느끼지 않지만 칭찬은 달갑지만, 질책은 개의치 않는다”라며 “그저 옷을 만드는 사람이지 추앙받고 싶지는 않다”고 말한다.
최 디자이너의 철학은 출발선에서 이미 정해졌는지도 모른다. 동대문의 작은 매장에서 옷을 팔기 시작했고, 의상 디자인 정규 교육과정은 받은 적이 없다. 옷이 좋아 독학으로 디자인을 공부했고, 경험을 바탕으로 지난 2003년 서울컬렉션을 통해 정식 데뷔했다. 현재는 뉴욕패션위크 공식 스케줄 무대를 꿰차고 있다.
그는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은 후회 없이 하고, 목표하는 바를 위해서는 일정 부분 포기할 수도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한발 빠른 트렌드 캐치와 디자인으로 럭셔리 스트리트 브랜드로 사랑받고 있을 때쯤 그는 보다 합리적 가격의 「더블유드레스룸」을 론칭한다. 자신의 역량을 한 곳에 집중하고 싶었지만 뉴욕 진출을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였다. 서울컬렉션, 방송 출연 등도 자신이 목표하는 바를 위한 관계성의 발전이라는 측면에서 계속 진행하고 있다.
최 디자이너의 가장 관심사는 뉴욕 진출이다. 총 4번 뉴욕컬렉션 무대에 섰고, 지난해에는 쇼가 끝난 후 GQ, WWD, 뉴욕 닷컴 등에 런웨이가 소개됐다. 또 뉴욕패션위크의 주최사인 IMG는 ‘주목할 만한 디자이너 3인’에 그의 이름을 올렸다. 쇼 이후 브랜드에 대한 문의가 쇄도했고, 트위터로 소개된 우여곡절 사연도 드라마틱한 추억으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2011 S/S 뉴욕컬렉션의 테마는 ‘슬로우(Slow)’였다. 바쁘게 일에 몰두하다 보니 자신의 느낌을 잃어가는 것 같아 천천히 나아가며 본연의 모습을 찾겠다는 의미였다. 올해 뉴욕 진출 콘셉은 아직 미정이지만 「제너럴아이디어」는 마운틴으로 가닥을 잡았다. 아웃도어 브랜드 「네파」와의 콜래보레이션도 같은 맥락에서 진행된다.
올해 가장 큰 목표는 해외 시장에서 ‘한국 디자이너’로 당당히 인정받는 것이다. 파리 트라노이 전시회가 코 앞에 다가와 있고, 뉴욕컬렉션, 콘셉코리아도 계획 되어 있다.
“뉴욕컬렉션, 서울컬렉션 모두 치열한 경쟁 속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것이다. 디자이너들 모두가 수요는 늘어나고 여건은 좋아지고 있는데 불평만 하기 보다는 브랜드 아이덴티티를 통해 정당하게 경쟁해 나가야 한다.”
패션인사이트 2011.1.12(수) http://www.f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