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지오 9월호 SPECIAL INTERVIEW] 원대연 상생협력위원장
‘내’가 아닌 ‘우리’를 위해 종을 울리자
최근 상생협력위원회가 출범했다. 이 위원회는 한국패션협회와 중소기업중앙회가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통기업간의 진정성있는 소통과 정보 교환으로 오해나 갈등의 폭을 줄이고자 조직됐다. 여기에 공정거래위원회가 가세, 패션 비즈니스 화합의 장을 조성할 분명한 목적성을 지닌다. 비즈니스를 넘어 인류의 영원한 테마인 상생(相生)과 동반성장의 뜻을 다시 되새기기 위해 원대연 한국패션협회장과 오세조 연세대 교수가 상생협력위원장으로 공동 추대됐다. 「패션지오」 9월호에서는 원 위원장을 만나 상생에 대한 철학을 들어보고 패션업계는 어떤 자세를 견지해야 하는지 들어봤다.
먼저 상생협력위원회가 출범하게 된 배경과 위원장으로 추대되신 소감을 듣고 싶습니다.
상생협력위원회는 대형유통업체와 중소납품업체간 소통과 정보교환을 통해 오해와 갈등의 폭을 줄이고 민간 차원에서 현장 중심의 실현 가능한 동반성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출범했습니다. 중소기업중앙회의 주도하에 정부측 인사가 참여한 위원회로 구성된 만큼 과거보다 많은 힘이 실리게 될 것으로 기대합니다.
8월 9일 유통업체, 납품업체, 정부, 학계 등 총 40명이 참석한 가운데 대 •중소기업 유통분야 상생협력위원회 1차 회의를 가졌습니다. 이날 회의에서 오세조 연세대 교수와 함께 공동위원장으로 선임됐습니다. 어려운 상황에서 가볍지 않은 주제를 담고 있는 만큼 위원장으로서 느끼는 책임감도 큽니다.
유통기업이나 대기업의 사회적 •도덕적 책임을 묻는 여론 조성은 과거에도 여러 번 빚어졌습니다. 단지 과거와 같은 목소리를 내는 것뿐이라면 상생협력위원회 발족의 의미는 퇴색되리라 봅니다.
맞습니다. 상생협력위원회의 목표는 과거와 같이 중소기업의 일방적인 성토의 장을 조성하려 함이 아닙니다. 어느 샌가 공공연하게 형성된 주종관계 속에 잊혀진 서로 간의 대화와 소통과 배려를 다시 한번 생각 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첫번째 목표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대기업이든 중소기업이든 어느 한쪽의 말만 귀 기울이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유통기업은 브랜드 전개사의 고충을 알아야 하고 브랜드 전개사는 유통기업이 처한 당면과제를 정확하게 알고 있어야 합니다. 또한 대기업은 중소기업의 입장을 이해할 수 있어야 하며 중소기업은 대기업이 세운 목표와 전략을 존중할 줄 알아야 합니다. 이런 분위기가 형성됐을 때 비로소 상하 관계나 주종관계를 넘은 대화의 장이 마련 될 수 있을 것이라 봅니다. 물론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기 이전에 자기자신이 가진 문제는 없는지 헤아릴 줄 아는 혜안을 가져야 하겠지요. 그것이 가능하다면 참뜻의 동반성장이라는 커다란 숙제를 풀 수 있을 것 입니다.
위원장께서 생각하시는 상생 철학은 무엇입니까?
경주 최부자집을 한 가지 예로 들어 봅시다. 400년 동안 9대 진사와 12대 만석꾼을 배출한 가문입니다. 이 가문의 전통은 진사 이상의 벼슬을 금했고 1만석 이상의 재산을 모으지 말라는 것입니다. 또 찾아오는 손님을 후하게 대접하고 사방 100리 안에서 굶어 죽는 사람이 없게 베풀었습니다. 보통 최부자집은 1년에 3000석의 쌀을 수확 했는데 1000석은 사용하고, 1000석은 손님에게 베풀고, 나머지 1000석은 주변에 어려운 사람들과 나눴습니다. 이밖에 최부자 집의 집안을 다스리는 지침인 육훈(六訓)은 너무나 유명합니다.
최준이라는 사람은 이 집안 마지막 부자였는데, 일제 시대에 이르러 독립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백산상회를 설립했습니다. 최준은 일본 경찰에 체포됐고 이 과정에서 백산상회는 부도를 맞아 3만석 상당의 빚을 지게 되고 일제 식산은행과 경상합동은행에 모든 재산이 압류됐습니다. 그러나 식산은행 총재는 최부자집의 숭고한 뜻을 높이 사 빚의 절반을 탕감해줬습니다.
최부자집은 부자의 도리를 몸소 실천한 집안입니다. 요즘 말하는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귀감입니다. 특히 나라가 위태롭던 시절에는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바친 훌륭한 집안입니다. 우리가 이 집안에서 배워야 할 것은 상생의 정신입니다. 남부러울 것 없는 만석꾼 집안이 남을 돌보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만을 추구했다면 400년이라는 세월을 이어올 수 있었겠습니까?
이것은 비단 대기업만을 겨냥해 예를 들은 것이 아닙니다. 중소기업 역시 최부자 집의 정신을 이어받아야 합니다. 지금 당장 기업이 어렵다고 해서 프로모션이나 공장을 쥐어짜는 식의 경영은 결코 올바르지 않습니다. 협력업체를 절대 주종관계나 상하 관계로 보지 말아야 합니다. 협력업체는 말 그대로 서로의 필요에 의해 협력하는 집단 입니다. 그들이 없다면 자기자신도 지속할 수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가까운 일본만해도 조그만 라면가게, 우동가게조차 300~400년을 넘긴 곳도 많습니다. 심지어 공고구미라는 기업은 1400년이 넘었습니다. 이들의 공통점은 언제나 자기자신의 불찰은 없었는지 항상 뒤돌아 보고 ‘내가 아닌 우리’를 먼저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우리나라에는 100년을 넘긴 유통과 패션 브랜드는 없습니다. 패션을 넘어 살펴봐도 1910년 일제통감부 특허국에 등록 된 ‘부채표’가 가장 오래된 상표입니다. 일본과 우리나라의 결정적인 차이는 상생관계 형성입니다.
홀로성장이 아닌 동반성장을 할 수 있다면 우리도 수백년을 이을 명품 브랜드와 명품 기업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를 위해 앞으로 상생협력위원회에서 어떤 부분에 주력할 계획입니까? 특히 공동 위원장으로 선임된 오세조 연세대 교수와의 역할 분담도 궁금합니다.
초창기에는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통과 브랜드 양자간의 파트너 관계를 다시 돌아 보는 계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를 위해 가장 좋은 방법은 대화와 소통입니다. 더 나아가 양측 모두 납득 할 수 있는 제도적인 기준과 시스템을 만드는 것이 위원회의 존재 이유입니다. 브랜드가 유통에 끌려가는 구조적인 모순이 생긴 것을 유통만 일방적인 책임을 져야 한다고 보지 않습니다.
이러한 구조적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처음으로 돌아가 중립적인 위치에서 모든 사안을 처리할 필요가 있습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있는 토대와 제도적인 시스템이 뒷받침된다면 이 기준에 의거해 잘잘못을 가리고 양측의 이익을 도모할 수 있는 방향이 설계될 것입니다. 오교수의 공동 위원장 선임은 이런 측면에서 이해돼야 할 것 입니다.
자신의 이익에 치우치지 않는 중립적인 입장에서 이론적인 방향성을 제시하는 역할이 될 것입니다. 그 방향성의 다른 이름은 글로벌 스탠다드가 될 것입니다. 저 역시 실무와 경영을 거쳤던 사람으로서 이론과 현실 사이의 괴리감을 좁혀 국내 패션유통사업의 옥토를 마련하는 데 주력하겠습니다.
상생관계 형성에서 가장 걸림돌이 되는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상생협력과 동반성장이란 패션업체와 유통업체 모두가 윈윈할 수 있는 비즈니스 구조를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합니다. 한쪽의 일방적인 강요나 양보로는 진정한 동반성장을 도모할 수 없습니다. 각자 자신의 문제점을 살펴보고 개선할 수 있는 의지를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대형유통기업은 기업철학을 가지고 동 반자적인 입장에서 중소기업이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중소패션업체도 규모가 작고 영세하니 무조건 도와달라는 식보다 퀄리티 높은 상품으로 소비자의 선택을 받기 위해 부단한 노력해야 할 것입니다. 어렵더라도 소통과 협의를 통해 작은 것부터 실천한다면 더 크고 어려운 문제도 차차 해결해 나갈 수 있습니다.
위원회가 발족하고 몇 주가 지났습니다. 지금까지 대기업과 중소기업, 유통과 브랜드의 실질적인 반응은 어떻습니까?
발족한지 한 달도 되지 않은 시점에서 뭐라 얘기하기 어렵지만 지금 갖는 느낌은 아직 갈 길이 멀다는 생각입니다. 물론 그 전부터 예상했던 것이지만요. 첫 단추는 양 측간 대화의 장을 마련하는 것에 있다고 말했는데 이것이 말처럼 쉽지만은 않습니다. 지금은 서로의 눈치를 보고 있는 상황이랄까.
지금까지의 관행과 관념을 바꾸기 위해 앞으로 수많은 시행착오와 고전이 예상됩니다. 그러나 쉽지 않은 길이라고 해서 다시 발길을 돌린다면 지금도 어려운 상황에 봉착한 대한민국 패션유통은 더욱 힘든 국면으로 접어들 수 있기에 상생협력위원장으로서 가져야 할 막중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