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트레이드 페어 가능성 확인”
‘제1회 인디 브랜드 페어’ 700여명 바이어 참관 실질적 상담 성과 이어져
참가 디자이너, 패션기업·중국 바이어·온라인 등 잇단 미팅으로 바쁜 나날
지난 11월 2, 3일 삼성동 섬유센터에서 열린 ‘제1회 인디 브랜드 페어’는 74개 디자이너 브랜드가 참가하고 700여명의 바이어들이 참관해 그야말로 실질적인 바잉 상담이 이뤄졌다. 바이어들은 대부분 “개성이 독특하고 실력이 뛰어난 많은 디자이너들을 한 곳에서 볼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고 입을 모았고, 참가 디자이너들 역시 “서울패션위크 페어 보다 훨씬 실질적이며 바잉 의사가 있는 바이어들이 많았다”고 소감을 전했다.
사실 일각에서는 이번 페어가 열리는 11월이라는 시기를 두고 ‘바잉 시즌이 아닌데 과연 실질적인 바잉이 일어날 것인가’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다. 디자이너들도 기존의 국내 전시회나 페어에 대한 경험에 비추어 볼 때 ‘바이어 없는 썰렁한 전시회가 되지 않을까’하는 걱정도 했었다고 털어놨다. 그러나 전시회가 시작되자 연일 북적거리는 바이어들과 계속되는 상담은 걱정과 우려를 싹 사라지게 했다.
패션기업, 차세대 콘텐츠로 주목
이번 전시회에서 가장 적극적인 마인드로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들과 상담한 바이어는 패션기업들이다. 최근 패션기업들이 하나 둘 편집숍 비즈니스에 뛰어들면서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가 차세대 주요 콘텐츠로 주목을 받고 있기 때문. 또 매장이 대형화, 메가화함에 따라 넓은 매장을 다양하게 구성할 수 있는 잡화에 대한 중요성이 커지면서 가방, 구두 등 잡화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관심도 높았다.
「더감」과 세컨드 브랜드 「더케이스토리」를 전개하고 있는 감선주 디자이너는 동광인터내셔널, 「나이스크랍」 등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았다. 특히 동광인터내셔널과는 1:1 멘토링 프로그램을 진행하기로 해 향후 국내 비즈니스를 전개하는 데 있어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게 됐다.
승화전사 기법을 사용한 독특한 프린팅 티셔츠로 많은 바이어들의 관심을 받은 「티백」 조은애 디자이너는 「지센」 「컬쳐콜」을 전개하는 위비스와 긍정적으로 상담을 진행 중이다. 조 디자이너는 “구체적인 비즈니스 모델은 좀 더 협의를 해봐야 겠지만 어덜트 시장부터 영 시장까지 다양한 소비자들이 좋아할만한 아이템이기 때문에 매우 긍정적으로 협의 중”이라고 말했다.
원사 선택부터 개발, 디자인, 생산까지 직접 핸들링함으로써 품질 좋은 니트 브랜드로 평가 받은 「엑스트라오디너리비」의 방지은 디자이너도 이어지는 미팅으로 눈코뜰새 없이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방 디자이너는 “전시회 때 여성복 「아날도바시니」 관계자와 얘기를 나눴다”면서 “상품을 완사입하는 방향으로 큰틀을 제시해줬는데 몇 번 더 미팅을 가져보고 신중하게 결정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여성복 「워크웨어」는 남성복 브랜드 「지오지아」와 콜래보레이션을 하기로 했다. DDP 그래픽으로 독특한 매력을 가지고 있는 「워크웨어」는 남성 티셔츠 그래픽 작업을 기획하고 「지오지아」에서는 그래픽 디자인을 사입해 상품화한 후 매장에서 판매하기로 했다.
강진주 「워크웨어」 디자이너는 “「워크웨어」 의류의 그래픽 디자인이 다소 강해 보일 수 있는데, 남성복에 적용됐을 때는 또다른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감을 가지고 작업 중”이라고 말했다.
이 외에도 액세서리 브랜드 「유즈」 여성복 「디쥬씨앨리스커밍」 「살롱드스타일리지」 남성복 「립언더포인트」 「Zsaint」 등이 각각 로만손, 에이션패션, 보끄레머천다이징, 이니플래닝, 신성통상과 1대 1로 다방면의 지원을 받기로 했다.
로만손 등 패션기업들은 이번 전시회 협찬사 겸 바이어로 참관하면서 디자이너 브랜드의 가능성을 꼼꼼히 분석해 향후 브랜드와 콜래보 등 전개가 가능하고 성장 가능성이 큰 브랜드를 하나씩 선정했다. 현재 시장에서 겪고 있는 어려움이나 소규모 독립 업체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물량 및 단가 등 여러 가지 문제점에 대해 코칭해준다는 계획이다.
또 트라이씨클 오가게는 PT쇼를 선보인 디자이너 중 대상과 금상을 시상함으로써 디자이너 브랜드와 관계를 맺었다. 대상에 선정된 여성복 「더룸」과 금상에 선정된 여성복 「데칼코메」는 지난 11월 11일 트라이씨클 본사에서 김형석 대표와 미팅을 갖고 상금 전달식 및 향후 협업 방향에 대해 큰 틀에서 협의를 했다.
정원경 「더룸」 디자이너와 황상연 「데칼코메」 디자이너는 “앞으로 쇼를 지향하는 브랜드가 되고 싶다”며 “현재 겪고 있는 여러 가지 어려운 여건을 타파하고 패션쇼를 하고 시즌 기획을 통한 오더 베이스를 정착시킬 수 있도록 서로 많은 도움을 주고 받길 바란다”고 뜻을 전했다.
최형석 대표도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는 트라이씨클의 비즈니스 영역 중 하나로 그 중요성을 실감하고 있다”면서 “온라인에서 디자이너 브랜드의 특징을 잘 보여주면서 판매로까지 이어질 수 있도록 적극적으로 도울 것”이라고 이들을 격려했다.
“한국 인디 브랜드 디자인 실력 뛰어나”
이번 전시회에는 중국 바이어들도 30여명 방문해 한국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에 대한 높은 관심을 나타냈다. 중국 바이어들은 일주일 간 서울에 머물면서 전시회를 참관하고 이후 개별 미팅까지 마쳐 구체적인 업무 체결을 맺었다.
대표적으로 여성복 「분더캄머」는 중국 여성복 브랜드 「MOAOL」과 2012년 F/W 시즌부터 협업을 하기로 확정했다. 중국 남경에 본사를 두고 있는 「MOAOL」은 2030 여성을 타깃으로 한다. 현재 중국 전역에 387개 매장을 직영으로 운영 중이며, 2010년 총매출 900억원을 기록했다.
뎅 알렉스 대표는 “「MOAOL」의 디자인을 점수로 따진다면 60점 정도 주고 싶다. 나머지 40점은 「분더캄머」와 협업을 통해 채울 계획이다. 심플하면서 엣지 있는 디자인이 굉장히 마음에 들어 전시회 첫째날 부터 점찍어뒀다. 전시회 이후 추가 미팅을 통해 서로 합의점을 도출했고 내년 F/W 시즌부터 「분더캄머」의 디자인이 우리 매장에서 판매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우선 「MOAOL」은 「분더캄머」의 디자인을 사입하고 중국 현지에서 생산해 매장에 판매하는 형태로 비즈니스를 전개한다는 방침이다. 향후 시장 테스트를 통해 판매가 잘 되면 「분더캄머」 브랜드 자체를 중국 내에서 전개할 수 있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았다.
「분더캄머」 신혜영 디자이너는 “일단 분더캄머의 디자인은 높이 평가해준 점에서 고맙게 생각한다”면서 “좋은 관계를 유지하면서 서로에게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남성복 「Zsaint」도 중국 기업으로부터 러브콜을 받아 구체적인 협의를 진행 중이다. 김지상 디자이너는 “중국 기업이 「Zsaint」의 감성이나 디자인을 좋게 봐줬다”면서 “디자인 소싱이나 컨설턴트 등 몇가지 형태로 얘기를 진행 중이며 긍정적인 결과가 나오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온라인 유통채널 차별화 키워드도 ‘인디’
온라인 유통채널도 ‘저가 상품’을 판매한다는 이미지에서 탈피하고 차별화를 시도하기 위해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로 눈을 돌리고 있다. 특히 이번 전시회에는 오픈마켓 11번가, CJ오쇼핑 등은 물론 텐바이텐, 29cm, 디자이너그룹, 일모스트릿 등 온라인 편집숍 바이어들도 대거 참석해 향후 온라인 마켓에서 디자이너 브랜드를 주요 콘텐츠로 만나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미 신진 디자이너 브랜드 전문관 ‘패션DNA’를 운영 중인 11번가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좀 더 다양한 디자이너 브랜드를 만났고 입점 상담을 진행했다. 이서연 패션2그룹 팀장은 “아직은 ‘패션DNA’가 기획전 형태를 띠고 있지만 내년부터는 꾸준히 성장시킬 계획”이라고 말했다.
CJ오쇼핑도 온라인 편집매장을 열고 디자이너 브랜드를 입점시킨다. 지난 11월 9일 CGV 청담 씨네시티 건물 4층에 편집매장 퍼스트룩마켓을 오픈한 CJ는 퍼스트룩마켓의 온라인판을 선보이겠다는 계획이다. 오프라인 매장에 입점되어 있는 브랜드를 위주로 구성하며 이번 전시회에 참가한 브랜드 중에서도 콘셉이 맞는 몇개 브랜드와 입점을 상담 중이다.
한 디자이너 브랜드는 “온라인은 오프라인에 비해 수수료가 저렴하고 재고 관리 및 판매 관리가 편하다는 점에서 필수적으로 입점하고 싶다”면서 “상품 사진은 룩북 촬영 때 찍어뒀던 사진을 활용할 수도 일처리가 수월한 편”이라고 적극적인 의사를 내비쳤다.
기회는 많은데 턱없이 부족한 여력은 문제
전시회를 방문한 여러 가지 유통채널의 수많은 바이어들은 현재 패션업계에서 인디 디자이너들에게 얼마나 많은 기회가 있는지를 잘 보여준다. 그러나 대부분의 인디 디자이너들이 쏟아지는 바잉 상담, 입점 제안을 100% 잡지 못하고 포기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1인 기업 또는 직원 2~3명이 고작인 소규모 사업체이기 때문에 일정 수준이 넘어가면 자금이나 인력 등 여력이 달려 업무를 처리하기 버겁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과연 인디 브랜드가 생존할 수 있는 모델은 무엇일까?
A 여성복 브랜드 디자이너는 이번 전시회를 통해 완사입을 해주겠다는 B 편집매장의 제안을 거절했다. 완사입을 하는 대신 B 매장에서만 판매되는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달라는 조건 때문이었다. 현재 A 브랜드는 위탁 판매 매장 3~4곳과 B처럼 새로운 디자인을 조건으로 완사입을 하는 매장 2곳에 상품을 납입 중인데, B에도 새로운 디자인의 상품을 만들어 주기에는 시간적으로 여력이 안되는 것이다.
A 브랜드 디자이너는 “위탁 판매는 재고 관리를 직접 해야하기 때문에 3~4곳 이상으로 늘어나게 되면 한꺼번에 관리하기가 힘들어진다”면서 “완사입을 해준다고 해도 독점 상품을 고집하는 곳이 대부분이기 때문에 그때마다 새로운 디자인을 하기에도 시간적으로나 인력적으로나 여러모로 힘에 부친다”고 토로했다.
업계에서는 “인력과 자금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인디 디자이너 브랜드가 체계적인 구조로 롱런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시즌 기획을 바탕으로 한 오더 베이스가 정착되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한 여성복 브랜드 바이어는 “패션기업에게 11월은 내년 S/S 시즌 상품 기획이 마무리되는 단계이면서 동시에 내년 F/W 상품 기획에 들어가는 시기이기 때문에 바이어 입장에서는 애초에 전체 상품 기획을 할 때 같이 호흡할 수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를 선호할 수 밖에 없다”고 언급했다.
그러한 측면에서 이번 전시회에서 바이어들의 높은 평가를 받은 브랜드는 「켈리오」다. 「켈리오」는 2011년 S/S 시즌부터 2012년 S/S 시즌까지 세 시즌의 기획과 바잉을 모두 마치고 현재 2012년 F/W 기획에 들어간 상태다.
오경숙 디자이너는 “선기획을 하면 전체 컬렉션에 대한 큰 틀을 잡을 수 있고, 앞으로 다가오는 시즌을 미리 대비할 수 있다. 대부분의 오더는 시즌이 다가오기 전에 미리 해결해놓고 시즌 중에는 인기 상품에 대해서만 추가 오더를 받는 편이다. 한 시즌 앞서 오더를 받다보면 몇 가지 상품에 오더가 몰리는 경우가 있다. 그럴 경우에는 인기 상품으로 판단해 20~30% 정도 생산량을 늘린다. 리오더하는 것도 시간이 꽤 걸리기 때문에 시간 단축을 위해 이 시스템을 도입했다. 다행히 국내 바이어들과도 이 시스템이 잘 맞아떨어져 순조롭게 비즈니스를 진행하고 있다”고 말했다.
디자이너가 디자인할 시간이 없다?
“직업이 패션 디자이너인데 옷을 디자인할 시간이 없다. 바이어와 미팅하고 매장 둘러보는 등 밖에서 뛰어다니는 시간이 더 많다. 규모가 작기 때문에 어쩔 수 없다는 건 알지만 이러다가 전체 방향성을 잃어버릴까봐 걱정도 된다. 해외처럼 비즈니스 업무를 전문적으로 대행해줄 수 있는 에이전시가 절실히 필요하다.”
시장이 활성화되고 비즈니스 유형이 다양해지면서 전문적으로 디자이너 브랜드 경영 업무를 대행해 줄 수 있는 에이전시에 대한 필요성이 커지고 있다. 물론 현장 감각을 익히고 시장의 생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직접 부딪혀 보는 게 당연하다. 그러나 좋은 비즈니스 모델을 찾기 위해서 걸리는 시간이 너무 길면 자칫 초기의 목적을 잃고 중도에 포기하게 되는 안타까운 경우가 생길수도 있다.
업계에서도 실력 있는 디자이너 브랜드들이 비즈니스 미팅만 하다 지쳐 그만두는 일이 없도록 체계를 잡아 줄 수 있는 에이전시가 필요한 시점이라는데 큰 이견이 없다.
국내외 디자이너 브랜드의 에이전트 비즈니스를 병행하고 있는 편집숍 POT(대표 송미선)는 “지난 9월 파리 랑데부 전시회에 국내 디자이너 브랜드 6개를 전시하고 여러 해외 바이어를 만났다”면서 “아무리 디자인이 뛰어나고 상품이 좋아도 바이어들이 원하는 것과 내가 원하는 것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전문적인 자료와 함께 미팅을 하지 않으면 실제 계약으로 까지 이어지기 힘들다는 것을 다시 한 번 느꼈다”면서 에이전시에 대한 중요성을 강조했다.
한 잡화 브랜드 디자이너는 “해외에는 디자이너가 디자인에만 집중할 수 있는 에이전시 비즈니스가 활성화돼 있다”면서 “한국에도 세계적인 능력을 갖춘 디자이너들이 많은데 그들의 능력을 최대한으로 이끌어 낼 수 있는 ‘패션계의 SM엔터테인먼트’가 생겼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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